(잉글랜드 축구리포트)영국팬도 놀란 이천수의 프리킥

입력 2007-02-09 09:36:27

영국에서는 서로 지지하는 축구팀의 최근 성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할 때가 많다. 필자의 친구 다빈은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서포터라는 이유만으로 이번 주 내내 풀햄한테 진 이야기만 듣고 산다. 첼시 팬인 집주인 아저씨는 존 테리가 부상에서 회복된 것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매일 축하를 받는다. 관심없는 팀의 경기라도 매일 성적을 확인해 두면 인간 관계를 유지하는데 적잖이 도움이 된다.

장소가 런던의 풀햄 홈구장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영국인들이 한국과 그리스의 A매치를 봤을 리는 만무하다. 심지어 같은 시각에 런던 반대편 에미리트 구장에서는 포르투갈과 브라질의 빅 매치가 겹쳐 열렸다. 그래도 경기 결과는 작게나마 몇몇 신문 스포츠면에 자리를 차지했다. 직접 경기장에서 관전한 필자도 경기 다음날, 한국의 승리에 대한 축하인사를 들을 수 있었다. 주변의 한국인들도 하루종일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노렸다가 좌절된 이천수는 이러한 인사 방식 덕분에 인지도가 크게 올라갔다.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경기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며 골을 넣은 선수에 대해 물어왔다. 물론 인사치레다. 그러나 전날 관중석에서 본 프리킥 장면에 대해 설명해주면 태도가 달라진다. "이천수가 프리킥을 할 때, 그를 마주보는 자리에 앉아 있었어. 내 쪽으로 공이 날아오다가 슬로우 모션처럼 휘어져서 골대로 들어가더라.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보기 힘든 장면일 걸."

사실 이 정도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멋진 슛이었다. 경기가 있었던 크레이븐 코티지 구장은 관중석과 경기장(피치)이 가깝기로 유명하다. 때문에 앞쪽 좌석에 앉으면 경기장 전체를 조망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선수들의 플레이를 텔레비전보다 훨씬 섬세하게 볼 수 있다. 이천수의 프리킥 장면은 필자 일행에게 입장료 20파운드의 100배가 넘는 인상을 남겼다. 모니터로만 수백번 봤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데이비드 베컴의 우아한 프리킥을 능가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앞서 소개한 다빈은 필자의 설명을 듣고 반대로 베컴을 떠올렸다. 물론 베컴보다 잘했다는 소리를 한 것은 아니다. "프리킥 방식이 베컴과 비슷한 것 같다.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비교해 보자." 이런 식이다. 그러나 축구에 대해서라면 듣기좋은 소리라도 과대평가를 하기 꺼려하는 영국인이 한국 선수와 베컴을 비교한다는 것은 그동안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영국 사람들은 이천수에 대해 더 알고 싶어했다. 위건 어슬레틱 입단이 무산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눈치였다.

그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박지성이라는 한국인 선수가 있다고 아무리 일러줘도 말할 때마다 '미스터 파크(Park)와 당신의 파크는 같은 파크냐'는 반응만 들어왔던 필자로서는 이천수에 대한 영국인들의 반응이 반갑다. 이들에게는 어려운 '천수'라는 발음도 여러번 반복하며 애써 이름을 기억하려 한다. 영국에서 이천수의 플레이를 볼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박근영(축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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