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강력반이 있고, 군대에 특수부대가 있다면 백화점에는 특판팀이 있다. 가만히 앉아 오는 고객을 응대하는게 아니라 직접 찾아다니며 타깃 마케팅을 펼친다. 마치 스나이퍼를 연상케한다. 제대로 한 건 걸리면 거래단가는 5억 원을 웃돈다. 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주거래 고객들이 있지만 언제 어떻게 변할 지 모른다. 명절을 앞둔 그들은 초긴장 상태다.
◇ 곳곳에 유혹이
취재차 대구백화점 황주동(40) 특수영업팀장을 찾아간 시간은 오전 10시쯤. 사무실로 취재진이 들어가자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하더니 다시 전화받기에 여념이 없다. 사전 양해를 구했는데도 일부러 저러나싶어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쉴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 그리고 "올해도 부탁드립니다."라는 짧은 인사전화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그러기를 10분쯤. 미안한 표정으로 회의용 테이블로 옮겨온 황 팀장은 상기된 얼굴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기업체를 상대하길래 그렇게 바쁜지 물었다. "외환위기 무렵, 전국 백화점 특판팀들은 초토화됐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죠. 거래기업이 100개도 채 안됐습니다. 지금은 12배 정도로 규모가 커졌습니다. 바쁠 수 밖에요."
입사 13년차인 그는 특판팀에만 10년을 몸담았다. 잠시 외도(?)를 한 적도 있었다. 백화점의 꽃으로 불리는 여성의류팀. 하지만 그는 인사이동 첫 해부터 희망부서란에 특판팀을 적었다. 4년을 내리 특판팀을 희망한 끝에 다시 그리운 친정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유를 묻자 "적성에 안맞더라구요. 힘들지만 역동적이고 그만큼 성취감도 큰 부서가 바로 특판팀입니다."
거래 단위가 큰 만큼 유혹도 적지않은 부서다. 에둘러 물었지만 그는 질문 의도를 간파한 듯 이렇게 답했다. "한번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에 납품을 하게 됐습니다. 명절 선물만 해도 7억~8억 원어치가 들어가는 거대기업이었죠. 갖은 고생 끝에 긍정적인 답을 얻어냈는데, 하루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거래액의 일정 부분을 발전기금으로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한번 거래를 트면 고정고객이 되기 때문에 쉽게 떨쳐버리기 어려운 유혹입니다. 하지만 한마디로 거절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업체와의 거래는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뒤늦게 알게 됐지만 리베이트 요구 전화는 업체 감사팀에서 걸려온 것이었다.
에피소드도 다양하다. 작년엔 하루에 구미 업체를 세 번이나 방문했다. 아침에 물품을 납품하러갔다가 구매 담당자가 추가 주문을 위한 샘플을 요청해 다시 찾았고, 밤에는 추가 물량을 맞추기 위해 다시 방문했다. 서울에서 내려오던 납품차량이 대전에서 고장을 일으켜 갑작스레 새벽에 트럭을 수배해 고속도로에서 상품을 옮겨싣고 온 적도 있다. "특판업무는 성취감이 없으면 근무하기 힘듭니다. 연고도 없는 지역의 신규업체를 방문해 상품을 제안하고, 그 상품이 선정돼 매출로 연결될 때 희열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인터뷰 도중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로 오히려 취재진이 미안해지고 말았다.
◇ 새벽 2시에 퇴근
동아백화점 특판팀 김병조(38) 대리는 지난 2000년부터 벌써 7년여 특판 영업을 맡고 있다. '영업의 달인'으로 불릴 만큼 회사에서 인정 받고 있다. 그의 하루는 아침 7시30분 기상부터 시작된다. 잦은 출장과 늦은 귀가로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두려울 정도. 거래처 약속, 물품 배송, 결제 등 다양한 일과를 정리하며 출근길에 오른다. 아침마다 라디오를 통해 경제시사 프로그램을 꼭 듣는다. 고객들과의 대화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경우가 많다. 9시쯤 회사에 도착하면 파트장인 그는 팀원들의 보고를 받고, 특이사항은 팀장에게 알린다. 티타임을 가지며 팀원들과 정보교환을 한 뒤 10시30분이 지나면 무한 경쟁의 전쟁터인 영업전선으로 뛰어나간다.
처음 특판팀 근무를 할 때만 해도 신규 고객을 무턱대고 찾아간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아예 만나주지도 않습니다. 한번 얼굴이라도 봐야 말을 꺼낼텐데 무조건 바쁘다며 거절당하니까 비참하더군요." 김 대리는 나름대로 노하우를 개발했다. 먼저 신규 사업체 주변을 둘러보고 기존 거래선의 인맥을 통해 정보를 파악한다. 그리고 퇴근 후 인터넷을 통해 대표이사 인사말, 경영방침, 회사규모, 만나야 할 담당자의 연락처 등을 파악한 뒤 접촉을 시도한다. 아무리 '영업맨'이지만 특판 관련 내용은 대화에서 10분 이상 차지하지 않는다. 자칫 영업에 관련된 이야기에만 치중하다 보면 '장사꾼'으로 보이기 쉽다. 취미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회사로 돌아오면 오후 6시. 퇴근은 아직 멀었다. 주문받은 상품의 가격조정, 물량수급, 배송 관련 협력업체와의 상담, 매장 담당자와의 만남 등을 소화해내려면 10분이 아쉽다. 급한 주문품을 직접 배달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새벽 2시가 넘어 퇴근하는 경우도 적잖다. 특히 명절이면 하루 200~250통씩 전화를 한다. 가만히 있어도 전화벨이 울리는 환청 경험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런 열정 덕분에 김 대리는 지난 2004년 이후 줄곧 특판사업팀내 매출 1위를 달리고 있다. "팀웍이 없으면 이런 실적도 없습니다. 개인 포상이나 인센티브를 바라고 일한다면 한두해는 가능하겠지만 지속적인 성과는 불가능합니다."
◇ 업체 수위실이 영업의 첫관문
롯데백화점 유무길(34) 법인영업팀장은 다른 직원들보다 1~2시간 일찍 출근한다. 외근이 많은 법인영업팀 특성상 남들보다 빨리 하루 일과를 체크하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 출근하는 내내 오늘은 업체 담당자와 어떻게 상담을 나눌까하는 생각으로 머리 속이 복잡하다. 라디오 교통정보와 시사상식에도 귀를 쫑긋 세운다. 출근 후 팀원들이 모여 티타임을 하며 각자 고객들을 정리하고, 당일 방문할 고객들에게 사전 전화를 건다. 며칠 전에 약속을 했지만 일정이 바쁘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체크하는 것.
당장 물건을 하나 파는 것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있다는 신뢰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팀원들은 각자 구역이나 업종이 정해져 있다. 가령 성서공단, 3공단, 구미공단 등 공단별로 전담 직원이 있고, 병원, 학교 등 업종별로도 전담 직원이 있다. 하루 평균 5~10개 업체를 방문하고, 오후 5시가 넘어 백화점으로 복귀한다. 오후 티타임에는 고객 상담에서 얻은 정보로 토대로 명절 선물 특판전략을 다시 점검하며, 영업 노하우를 공유한다.
명절 때 직원들의 선물을 결정하는 기업체 구매담당자들은 법인영업팀에게는 가장 중요한 고객. 하지만 이들을 만나기 위해 기업체를 방문할 때 항상 먼저 거쳐야 할 곳은 수위실. 업체 담당자와 거래 성사를 위한 첫 관문이 바로 수위실인 것이다. 만날 시간까지 약속한 고객이라도 급한 회의나 자리에 없어 연락이 안되면 수위실에서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법인영업팀 직원들은 자주 가는 기업체의 수위실 직원 이름을 외워두거나 음료수라도 가끔 사주며 안면을 트는 것이 중요하다고 귀뜸한다.
유무길 팀장은 "이번 설 명절은 차별화를 모색 중입니다. 지역시장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상품을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선보인다는 거죠. 다점포라는 장점을 활용해 우수 상품을 대량 구입해 파격적인 가격으로 선보인다는 전략입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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