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옥입니다] 시간 가게

입력 2007-02-07 07:06:08

월말에 달랑달랑 위태로운 통장 잔고를 볼때면 "엇, 이럴 리가"하는 생각부터 든다. 어디서 뭉텅이 돈이라도 잃어버린 것 같은,엉뚱한 박탈감마저 들곤 한다.

새해인가 했더니 눈깜짝할새 한 달 서른하루가 휘리릭, 지나가버렸다. 매년 거듭되는 것임에도 갈수록 그 느낌의 강도가 세어짐은 무슨 까닭인가. 한바탕 속은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을 송두리째 도둑질 당한 것 같기도 하다. 분명 자신이 사용했으면서도 어떻게 썼는지 아리송한 신용카드처럼.

자신을 '은퇴 노인'이라고 소개한 어느 어르신이 메일을 보내왔다. 올해 77세 喜壽(희수)가 된다는 그분은 나이 한 살 더 먹게된 심정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세월은 나이만큼 가속이 붙는다는 속설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액셀러레이터를 안 밟는데도 과속으로 달려가고 있으니 남은 '老程(노정: 원래는 路程)' 감시카메라에 잡히지는 말아야지…."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장타령 하듯 말한다. "어이구, 10만원도 깨놓으면 후딱, 한 달도 깨놓으니 후딱."

미국 뉴욕의 웨인 쉔크라는, 50세된 남자의 사연이 하도 공교로워서 기가 막힐 정도다. 지난 12월말 시한 부 1년의 말기암 진단을 받았는데 올 1월에 100만 달러짜리 로또 복권에 당첨됐다. 생애 최악과 최고의 순간이 한꺼번에 겹쳐진 것이다. 게다가 복권은 일시불 지급이 아니라 매년 5만 달러씩 20년간 지불하게끔 돼있었다.

딱한 사정을 호소했지만 규정상 어쩔 수 없었던가보다. 처음이자 마지막 당첨금을 들고 알래스카로 사냥여행에 나선 그에게 기자가 "사고 싶은건 없소?"라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시간을 사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웨인 쉔크들은 애타는 심정으로 소망하고 있다. "좀 더 시간을!" 달라고. 꼬리를 남기며 가뭇없이 사라지는 별똥별처럼 얼마 남지 않은 生(생)의 길이를 바라봐야 하는 사람에게 1분·1초의 의미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 역시 결국은 시한부 인생 아닌가.

정말이지 시간을 살 수만 있다면…. 하지만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시간 가게란 없다. 그러기에 '시간'에 관한 정의에 하나 더 추가돼야 할 것 같다.'그무엇으로도 결코 살 수 없는 것.'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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