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학년도 정시모집 대학별 전형이 마무리되면서 올해부터 도입되는 통합논술의 윤곽이 조금씩 그려지고 있다. 2007 논술고사 분석 결과 △논술 주제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 내용의 연관성이 커지고 △대학들의 요구가 한층 구체화·세분화하고 △출제 유형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져 통합논술에 대한 두려움이 상당 부분 제거됐다. 이를 통해 통합논술의 개념과 대비 방법 등을 살펴보자.
▨ 2007 정시에 비친 통합논술
2008 통합논술 실시를 앞두고 대학들은 제시문 선정과 논제, 요구사항 등에 상당히 신경을 쓴 듯하다. 기존 형식의 마지막 논술고사라고 하지만 수시 논술고사처럼 통합논술의 방향을 담거나 다소 변형시킨 흔적이 뚜렷하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논제가 세분화했다는 점이다. 정시 논술고사는 인문계열을 중심으로 다소 추상적인 주제에 대해 1천500~2천 자 분량으로 하나의 답안을 쓰는 형태가 주류였다. 올해는 하나의 답안을 쓰되 구체적인 논술의 조건을 제시한 뒤 이를 충족시킬 것을 요구하는 대학이 많았다. 논술고사의 반영 비율을 높이려면 채점의 객관성을 확보해야 하고, 응시 범위를 넓히려면 채점이 쉬워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반영됐다고 할 수 있다. 우수한 학생을 판별하고 싶은 대학의 필요에도 맞아떨어진다.
둘째, 제시문은 크게 난해하지 않지만 정밀한 독해와 분석 능력을 요구했다. 비교·유추·대조 등을 통해 제시문의 연관성을 파악하고 논점에 맞게 이해하는 독해력 파악에 평가의 초점을 맞춘 경향이 두드러졌다. 정확성을 요구하므로 논점에서 빗나가면 영점을 맞을 위험까지 생겼다. 다양한 배경지식보다 높은 수준의 독해능력을 갖춰야 함을 시사한다.
셋째, 독창적인 문제 해결 능력과 글쓰기 실력이 뒷받침돼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제시문이 평이하고 논제가 세분화했다는 사실은 답안 쓰기가 쉬워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수험생들이 실제 받아들이는 느낌은 전혀 다를 수 있다. 무엇을 써야 할 지는 알겠는데 무슨 말로 어떻게 써야 할 지 막막한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와 연관시켜 해결 방안을 요구하는 문제라면 더욱 답답해질 수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창의성이고 글쓰기 실력이다.
넷째, 교과와의 연관성이 높아졌다. 이는 단순히 교과서 내용을 지문으로 활용한다는 의미를 넘어 논술을 통해 교과의 주요 개념이나 원리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평가하고자 하는 대학의 의도가 담긴 것이다. 2007 정시에서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으나 수능과 내신의 변별력이 떨어지는 2008학년도에는 여러 영역을 걸쳐 다양한 제시문을 활용하는 형태가 많아질 것이다.
▨ 통합논술의 형태와 평가 기준
2008학년도 입시부터 도입되는 통합논술의 형태는 거의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종전의 논술은 제시문을 읽고 서론-본론-결론으로 이어지는 1천500~2천 자 분량의 완결된 한 편의 논술문을 쓰는 형태였다. 통합논술은 이와 크게 다르다. 예시문제와 2007 논술을 분석해 보면 통합논술은 제시문과 주어진 자료를 읽고 300~1천 자 분량의 5문항 내외를 써야 한다. 제시문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연관성 파악, 관련된 자신의 입장, 현실 문제에의 적용 등을 담는다. 이 정도 분량이라면 서론-본론-결론 같은 형태를 지키기 힘들다. 지키려 들다간 감점당하기 십상이다.
채점 역시 마찬가지 틀에서 기준을 잡을 수밖에 없다. 먼저 평가하는 요소는 독해력이다. 제시문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가, 제시문 사이의 상호 연관에 대해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통합논술의 출발점이다. 이와 함께 유의해야 할 점은 주어진 논제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어진 문제는 무엇을 묻고 있는가, 논제에서 제기된 개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를 뒷받침하는 논거는 무엇인가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맞춰 답안을 쓰느냐에 따라 점수가 판가름난다.
둘째, 논지의 일관성이다. 한 편의 논술문에서 일관된 논리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여러 문항, 그것도 다양한 유형과 내용을 담은 문항에 답하면서 논리적 일관되게 이끌어가는 데는 적잖은 능력이 요구된다. 학원에서 배우는 모범답안을 외워 쓰다가는 앞뒤 안 맞는 논리 때문에 낭패를 볼 가능성이 크다. 대학들은 몇 개의 논제로 나누면서 내용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수험생의 철학과 논리력을 검증하려 들 게 분명하다.
셋째, 문제 해결 과정의 창의성과 타당성이다.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은 통합논술의 주요 평가요소다. 여기서 말하는 창의성은 단순히 기발하거나 튀는 발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울대가 밝힌 채점기준 가운데 창의력의 구성 요소는 논의 전개의 심층성, 다각성, 독창성이다. 이는 자신만의 독특한 생각이라고 해도 타당한 근거를 갖추고 설득력을 가질 때에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넷째, 논리적 표현 능력이다. 논술문은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침으로써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요구되는 외형적 요소는 정확하고 빈틈없는 표현이다. 단어와 문장의 정확한 구사, 학생의 수준에 맞는 용어나 어휘 사용, 논리 전개 과정에 따른 간명한 문장 연결 등은 꾸준한 연습을 통해서만 갖출 수 있는 능력이다.
▨ '죽음의 트라이앵글'은 없다
고교 3학년에 진학하는 학생들 사이에 한때 유행한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말은 통합논술의 개념과 형태가 드러나면서 의미를 잃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내신과 수능, 대학별 고사라는 세 가지 전형 요소를 제각기 준비해야 하는 수험생들의 고통은 사실과 다르다는 얘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험생들은 개별 교과 공부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세 가지를 모두 대비할 수 있다. 문제는 공부 방법이다. 내신 따로, 수능 따로, 논술 따로의 공부로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에 갇힐 수밖에 없다. 벼락치기 형태로 교과 내용을 암기하는 내신 공부, 문제집 풀이에 매달린 수능 준비, 학원과 모범답안에 의존하는 논술 대비가 그 전형이다.
이제는 공부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내신 공부는 교과서에 나오는 기본 개념과 원리,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수능 대비와 논술문 쓰기의 기본은 갖추는 것이다. 수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교과서의 내용을 조금씩 심화시키고 확장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교과 내용을 다른 교과, 시사 문제, 현실 생활 등과 연관시켜 사고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는 수능 고득점에 이르는 필수 과정일 뿐만 아니라 통합논술이 요구하는 사고력을 키우는 발판이 된다.
논술 대비는 여기에다 독서를 더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교과서에 등장한 인물의 주요 저서나 내용과 관련된 고전 작품 등을 틈나는 대로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내신과 수능 공부를 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 독서를 통해 배경 지식을 풍부하게 쌓으면 교과에 대한 이해도는 더욱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런 체계로 공부를 하면서 나만의 생각을 키우고, 이를 한두 문단 분량으로라도 써 보는 기회를 자주 가지면 논술 실력은 절로 길러진다. 논술 학원 다니는 데 시간과 힘을 빼앗길 게 아니라 독서와 글쓰기 습관을 들이는 것이 대학 진학 이후의 미래를 위해서도 한층 소중하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