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잿빛 산자락이 맞닿는 곳에 천년이 넘도록 한자리를 지켜온 절이 있다.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하늘빛을 고스란히 받은 산사의 기와는 얼핏 푸른 기운마저 감돈다.
전남 장성군 백암산(白巖山) 끝자락에 둥지를 튼 고불총림백양사(古佛叢林白羊寺).
참다운 '나'를 깨쳐 생사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비구'비구니들이 조화를 이뤄 한 곳에 머무름이 마치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하여 '총림'이라 불리는 곳이다.
백양사는 일찍부터 호남 승풍을 진작해온 사찰. 그러기에 하안거와 동안거 때가 되면 전국의 납자들이 모인다. 모두가 이 곳에서 부처의 말을 배우고 부처의 행동을 익혀 부처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다.
옛날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인가요?"라고. 이에 마조스님이 말하기를 "마음이 곧 부처이다."고 했다. 마음이 깨달음의 자리라는 뜻이다.
우리의 마음은 욕망으로 어지럽다. 그러나 어지러운 이 마음의 진면목을 비춰볼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다르게 보이리라. 화두를 들고 참선 수행하는 납자들의 구도정신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백양사가 1천400년 동안 제자리를 지킨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총림이란=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지칭한다. 우리나라엔 해인총림 해인사, 영축총림 통도사, 조계총림 송광사, 덕숭총림 수덕사, 고불총림 백양사 등 5대 총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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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로의 관리인이 "어디서 왔냐"며 살가운 관심을 보이는 백양사 산문초입.
단청이 고운 일주문을 통과하자 차가운 공기가 귓전과 콧등을 때린다. 승과 속의 경계를 넘었음을 알리는 어루만짐이 제법 알싸하다.
일주문에서 백양사 경내까지는 1.5km.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차로 그냥 지나친다면 왠지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서이다.
아기단풍나무와 벚나무가 양편으로 늘어선 이 길은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길 100선'과 '가장 걷고 싶은 길'에 선정돼 있다.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엔 눈 터널로, 새싹 돋는 봄엔 꽃 터널로, 단풍 곱게 물드는 가을엔 단풍 터널로 더욱 유명하다.
자연스럽게 서로를 향해 허리를 굽힌 나무들과 어긋나버린 인연의 끈을 다시 잡으려는 가지들로 이루어진 나무터널을 걷는 기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길은 한적했다. 이른 감이 없진 않았지만 절로 찾아드는 길은 쓸쓸함마저 돌았다.
그래서 '아직은 겨울이려니…' 하는 스스로의 생각을 위로삼아 길을 재촉 해본다.
산문을 들어선지 20여분. 연못과 작은 정자, 수령 500년의 갈참나무가 문지기처럼 서 있는 쉼터가 눈에 띤다. 정자 옆 맑은 연못엔 살얼음이 얼었고 물 아래로 노니는 갈겨니 떼가 한가롭다.
이 즈음 잿빛의 백암산 자락으로 가려진 사방은 더 이상 '세상 속(世間)'이 아니다. 때때로 마음 한 구석에서 불쑥 솟구치던 욕망과 미움, 타는 그리움, 서러운 사연들은 이미 '세상 밖(出世間)'의 일이 됐다. 어느새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산문을 들어선지 꽤 시간이 흐른 것 같다. 하얀 바위봉우리가 날개를 편 학을 닮았다는 백학봉이 정면에 턱 버티고 섰다. 한 눈에 봐도 그 청정한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 일까. 백양사는 백학봉의 드센 기세를 피하려는 듯 왼편으로 약간 비껴 있다. 대신 백학봉을 중심으로 양쪽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 사이로 쌍계루가 우뚝 서 있다. 아래는 계류가 모인 연못이다.
쌍계루는 백암산의 절경을 볼 수 있는 으뜸 장소다. 사람들은 무심코 이곳에 올라 계곡을 내려다보지만 실제는 연못 아래 징검다리 중간쯤에서 거꾸로 쌍계루를 올려다 봐야 한다.
이 곳에 서서 한 눈에 바라보는 백학봉과 쌍계루, 그리고 연못에 비쳐진 이 둘의 전사(轉寫)풍경은 조선 팔경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봄철 쌍계루 연못 좌우로 긴 가지를 늘어뜨린 이팝나무(수령 700여년)가 수면을 하얗게 수놓을 때면 화사함의 극치를 이룬다. 이런 이유로 쌍계루 안에는 이곳을 찾은 감흥을 노래한 당대의 석학 이색, 정도전 ,서거정, 최익현 등의 문장들로 빼곡하다.
맞은 편 소요대사 부도탑군도 멋진 볼거리이다. 팔각의 석조기단에 8장의 연꽃무늬가 탑신을 받치고 윗부분에 4마리의 용과 구름 문양이 새겨진 이 부도탑들은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양식을 자랑하고 있다.
이어 사천왕문을 넘어 들어선 백양사 경내는 호남 선풍(禪風)을 진작하는 총림답게 가람과 고목들이 한데 어울려 단아하고 조화로운 멋을 풍긴다.
법선스님(사회국장)은 "백학봉의 강한 기운을 막기 위해 대웅전이 그 아래에 배치됐다."고 운을 뗀 뒤"사찰 규모는 작아도 호남 선맥의 대가람으로서 백파, 만암, 청화, 서옹으로 이어지는 큰 스님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라고 말했다.
백제의 천년 고찰로 예부터 깐깐한 구도정신을 바탕으로 현실참여적인 가풍이 셌던 백양사는 갑오농민전쟁과 한국전쟁 등 역사적 격랑 때마다 피폐해졌고 민중의 힘과 형편에 따라 절을 세우다보니 규모면에서는 그리 화려하거나 크지 않다.
그러나 백양사 인근 12개 암자 중 8곳에서는 70명의 비구'비구니스님들이 동안거 중이다. 이 중에는 눈 푸른 납자 20여명도 '참 나'를 좇아 결가부좌를 틀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 백학봉을 배경으로 앉은 대웅전은 구도를 향한 서슬 퍼런 납자들의 도량다운 웅장함이 깃들어 있다.
백양사는 경내구경도 운치가 있지만 주변에 흩어져 있는 암자들도 저마다의 멋과 나름의 경치를 지니고 있다.
백양사를 나오면 왼편으로 놓인 산길. 약사암 가는 길이다. 꼿꼿한 호남 선풍을 말해주듯 약사암을 오르는 길은 가팔랐다. 숨이 턱에 찬다. 그러나 그만한 수고의 대가가 있다. 약사암에서 내려다 보면 오롯한 백양사 경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옆엔 백학봉에서 솟아난 약수로 유명한 영천굴과 석조관음보살상이 지키는 기도법당이 있다.
약사암 위의 운문암은 동안거 중인 납자들의 은거처. '남(南) 운문 북(北) 마하연'이라 해서 이 땅에 선맥이 뿌리를 내린 이래 수행자들이 많이 찾는 암자로 유명하다.
길을 돌려 쌍계루쪽에서 오른 쪽 길로 접어들면 비구니들이 거주하는 천진암이다.
천진암은 암자라고는 하나 얼핏 봐도 독립된 사찰 못지않은 규모에 산뜻한 단청과 깨끗한 외관이 특징. 이곳을 찾아야 할 이유는 비자나무 숲 때문이다. 암자에서 왼편 숲길로 들면 참빚 모양의 이파리가 이색적인 비자나무 종자는 예부터 구충제로 쓰였다. 백양사는 바로 이 비자나무 북방한계지점이다.
청류암도 빼놓을 수 없다. 백양사를 빠져나와 일주문 근처에서 다시 오른편으로 꺾어 든 길은 토종벌을 치는 가인마을을 지난다.
응달진 산 속 잔설만이 길손을 맞은 청류암은 세월에 뜯긴 흔적이 역력하다. 청이끼 낀 절담이 빛바랜 시간만큼이나 오래됨직하다. 이 볼품없는 암자가 그러나 고불총림의 엄한 가풍을 지켜가는 율원이다. 작은 부처가 찬바람을 맞고 있는 관음전 앞 작은 범종을 두드리니 그 청아한 소리가 계곡을 메아리친다.
참된 구도의 길이란 드러난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맑은 정신에 있다는 울림이다.
청류암 옆 남천감로. 계곡에서 내려 온 물이 이끼 낀 작은 돌함지에 모이고 있다. 일명 장군샘이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농민혁명에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이 곳에서 목을 축인 슬픈 역사가 전해지는 장소이다. 청류암 주위의 앙상한 겨울나무 숲은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가야한다는 생각을 일깨운다.
◇백양사 가는 길=백양사 가는 길은 의외로 수월하다. 88고속도로 담양 나들목에서 내린 다음 계속 직진하다가 백동 네거리에서 좌회전 24번 국도를 타면 된다. 이 때부터는 이정표가 잘 안내하고 있어 찾아가기 어렵지 않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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