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의 스타토크]성악가 최덕술

입력 2007-02-01 16:07:54

600여회 이상 공연을 한 성악가 최덕술. 전국 어느 곳에서나 성악가가 필요로 할 때면 캐스팅 0순위로 손꼽히는 그다.

약속장소로 들어서는 최덕술씨의 콧수염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콧수염이 제 이미지 브랜드가 된 것 제가 수염 알레르기가 있어서예요. 왜 오페라 공연 때 캐릭터 때문에 수염을 붙이잖아요. 그때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이 많이 했어요. 그래서 기르기 시작 한건데 생각지도 않게 잘 어울린다고해서 계속 기르고 있습니다. 이젠 콧수염성악가 최덕술로 통해지요."

그가 처음부터 음악인이 되기로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사실 법대에 진학했던 법학도. 하지만 교회에서 노래를 하면서 뒤늦게 성악가로 전환했다. 늦게 재능을 발견하고는 군대에 가자마자 음악공부에만 매달렸다. 제대를 하고도 하루종일 학교에서 연습에만 매진했을 정도였다고. 결국 그에게는 졸업하면서 대구시립교향악단에 들어가는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이도 잠시. 그는 곧 직장을 포기하고 독일로 날아가 독일 국립 뒤셀도르프 음악대학원 과정에 들어갔다.

"음악색깔을 다듬어, 더 높이 날기 위해서 택한 고생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피아노 전공한 아내와 함께 반주를 하고 노래 공부를 했던 행복한 시절이었지요. 돌이켜보면 고생도 많이 했지만요."

그리고 그는 독일공부를 마치고 성악의 본고장인 이태리로 날아가서 공부를 더 할 것을 결심하고는 이탈리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졸업할 때 쯤, 이탈리아에서 제법 유명한 오페라단에서 무대에 올리는 라보엠 오디션을 봤는데 덜컥 주인공으로 합격한 것이었다.

이 때부터 그의 인생이 펴기 시작하나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탈리아에서 인정받기 시작할 즈음, 몸이 아파 귀국을 했다.하지만 고국에서는 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1년 동안 청도 인근에 위치한 조용한 호숫가에서 하루 종일 연습하고 책만 보는 일에만 매달렸어요. 참 암담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다른 직업을 택할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았지요. 그 때 만일 포기했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테니까요" 그는 오로지 성악가로만 인정받고 싶어 죽도록 연습했다.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은 이 뚝심이다.

사실 그는 성악가로서 작은 체구는 아니지만 큰 체구도 아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배를 만져보라고 해서 쿡 눌러봤는데 손가락의 한마디도 허용하지 않는 단단한 근육이 손 끝에 닿았다.

"성악가는 몸이 악기잖아요. 악기가 병들고 아프면 노래도 병들고 아파서 좋은 음악을 할 수 없어요. 60대가 되어서도 건강한 몸을 악기로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죠."

그가 제일 잘 부르는 노래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다들 잘 어울린다고 칭찬을 해 주기 때문이란다.

그의 생활신조도 예술가답다. "정직한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음악인으로서 제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더 고민하고 채워 나가야죠. 음악은 언어와 같아서 솔직함을 담아야 진실로 전달되죠. 그러니까 더 정직하게 대하고 노래해야겠는 생각뿐입니다."

한 3시간 남짓을 얘기하는 사이에 주변도 어두워졌다. 그가 얘기한 마음의 열정을 담은 정직한 노래 소리가 그가 말하는 몸이라는 악기 속에서 평생 울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