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다르면 서로 얼마나 다를까요.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다들 '몸'이라는 본능적 도구로 살아가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추우면 입어야 한다는 것.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 이 단순한 이치가 삶을 이끄는 원초적 힘이기도 하지만, 한편 '정신'이라는 것을 지니고 있는 인간 존재의 어쩔 수 없는 슬픔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정신이니 학문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도 몸이라고 하는 '1층'이 있어야 쌓아 올릴 수 있는 '2층'이 아니겠습니까. 이 책은 '2층'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한 지식인의 눈을 통해 '1층'의 현실을 솔직하게 조망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이제 막 교직에 몸담은 '겐지'가 주인공입니다. 그는 '자기가 읽고 싶은 걸 읽는다든지, 쓰고 싶은 걸 쓴다든지 생각하고 싶은 걸 생각하고 싶다는, 그런 욕구에 사로잡혀 늘 책상 앞에 달라붙어 있는' 사람이지요. 비사교적인 그는 친척들에게 괴짜 취급을 받고 있었지만, 도리어 "교육이 다르니까 별 수 없지"하는 말로 은근히 그들을 무시하며 오로지 자신의 일에만 파묻혀 지내는 사람입니다. 그는 아내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학문으로 단련된 그의 머리로 본다면 자신의 명백한 논리에 진실로 다소곳이 따라주지 않은 아내는 절벽 같은 벽창호'일 뿐이지요.
그런데 세상은 그런 겐지를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양부가 나타나 자꾸 손을 내밉니다. 겐지는 어릴 적 양자로 갔다가 양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다시 친가로 돌아왔지요. 양부는 겐지가 일할 나이가 되면 덕 볼 요량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증서를 남겨놓았습니다. 그가 와서 "너를 키운 건 나라구"하면서 어릴 적 잘해준 것들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겐지는 어쩔 수 없이 지갑을 열게 됩니다. 가난한 누이와 형과 장인에게도 겐지는 도움을 줘야 합니다. 양부는 증서를 미끼로 거금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초조해진 겐지는 자주 돈 문제를 생각하게 되지요. 변변한 옷조차 없는 가난한 자신이 그들에게 '용돈 금고'처럼 보여지는 게 화가 나기도 합니다. 왜 여태까지 물질적인 부를 목표로 일하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도 하지만 세상 물정에 어두운 자신이 부자가 되긴 이미 틀렸다는 것도 압니다. 그제야 그는 본능적인 욕구나 두려움 앞에선 누구나 평등하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이러지요."교육이라는 껍데기를 벗기고 보면 실은 나도 다를 게 없다."
나스메 소세키의 글은 과장도 수식도 없으며, 그래선지 물 흐르듯 자연스럽습니다. 쉽게 읽히면서도 깊이를 유지하는 글이란 지식이 아닌 남다른 삶의 통찰에서 오는 것일 테지요. '국민작가'라는 찬사가 역시 아깝지 않아 보입니다. 마지막 페이지의 이 문장은 꽤 유명하지요. "이 세상에 끝나는 것이란 하나도 없어. 일단 한번 일어난 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그저 여러가지 형태로 모양만 바뀌는 거니까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야." '돈의 힘으로 지배하지 못하는, 참으로 위대한 그 무엇'을 발견하기 전까지 우리들의 삶이란 모양과 형태가 다르긴 해도 결국 적나라한 본능의 변형일 뿐이라는 의미로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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