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판 동향을 사자성어로 요약한다면 支離滅裂(지리멸렬)과 離合集散(이합집산)일 게다. 이합집산은 선거의 해이니 그렇다 치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앞두고 여당이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며 '우리당'에서 '남의 당'으로 갈라서는 희한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한나라당도 다 된 밥에 코 빠뜨릴까 표정관리 중이나 줄 세우기가 한창이어서 언제 쪼개질지 알 수 없다.
流言(유언)과 蜚語(비어)도 난무한다. 범여권의 유력 후보가 失足(실족)하자 야당 후보를 데려다 옹립하자는 말이 나오고, 이 후보는 거꾸로 탈당한 여당 출신 의원들을 영입하자고 제안한다. 온갖 饒舌(요설)이 등장하고 '소설가'와 점쟁이도 가세해 '찌라시 소설'과 '사이비 예언'을 전파하며 대목을 노린다. 여기에 레임덕을 참지 못하는 대통령까지 '개헌론'을 들고나서 혼란을 부추기니 亂世(난세)가 따로 없다.
권력은 父子(부자)간에도 나누지 않는다고 한다. 민주주의제도 아래서 권력은 선거를 통해 창출된다. 선거는 '승자 독식'의 게임이다. 특히 대통령제는 제로섬게임이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게임엔 나름의 규칙(룰)이 있다. 선거에서 게임의 룰을 지키지 않으면 독재가 되거나 난장판이 된다.
최근 여권이 벌이는 分黨(분당)과 신당 창당논란은 게임의 룰을 어지럽히는 '난장판 정치'의 표본이다. 정당 정치의 핵심은 책임 정치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았으면 그 잘잘못에 대한 심판도 선거를 통해 받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형세가 여의치 않다고 새살림을 꾸리고 간판을 바꿔 달겠단다. 그러면 선거철에만 '나라의 주인'이 되는 국민들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허공에다 종주먹을 들이댈 수도 없지 않은가.
지난 2005년 8월 진보적 학술단체들이 모여 '박정희 신드롬'을 주제로 동대구역 부근 한 호텔에서 순회 세미나를 개최한 적이 있다. 2004년 총선 이후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의 리더로 부상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기가 旭日昇天(욱일승천)하던 시점이었다. 이날 세미나는 주최 측이 진보 단체여서 예상대로 박정희 비판이 주류를 이뤘다. 박정희를 옹호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토론의 재미와 攻防(공방) 유도를 위해 '악역'을 자임했다.
"박정희 독재와 失政(실정)을 비판하고 매도하더라도 박정희 신드롬은 금세 숙지지 않을 것이다. 개발독재와 압축성장의 폐해가 크지만, 고도성장은 신화가 됐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구축한 국가경영의 패러다임을 뛰어넘지 못하니 박정희가 되살아난 것이다. 현정권이 정치를 잘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면 박정희는 그냥 두어도 다시 관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당연히 반박이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필자의 발언을 부인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뒤 어떻게 됐는가. 탄핵정국의 어부지리로 다수당이 돼 국회까지 장악하고서도 참여정부는 박정희를 극복하기는커녕 박정희 따라하기에 급급했다. 좌회전 신호를 넣고 우회전하는 '좌파 신자유주의' 노선은 보수와 진보 모두로부터 唾罵(타매)의 대상이 됐다. 보수진영은 성장도 분배도 실패한 무능 정권으로 매도했고 진보진영은 빈부 격차를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시킨 무책임 정권으로 비판하며 등을 돌렸다.
그렇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딸 박근혜 의원, 박정희 시대 샐리러맨의 신화(?) 이명박씨의 부상은 전적으로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공로다. 정부'여당의 무능 탓에 박정희와 한나라당은 가만히 앉아서 과대평가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따라서 거품 제거가 필요하나 저만 살겠다며 난파선에서 앞다퉈 뛰어내리고 있는 여권의 분위기로는 기대난이다.
여당 의원들이 정녕 걱정하는 것은 오는 12월의 대통령선거가 아니라 내년 총선이라는 사실을 국민들도 잘 안다. 따라서 약삭빠르게 문패만 바꿔 국민을 속이려는 '얼치기' 정치인들을 내년 총선 때까지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지난 2004년 탄핵정국의 태풍에 직격탄을 맞고 낙선한 민주당 추미애 전 의원처럼 3보1배로 대국민 사죄부터 하는 정치인을 만나고 싶다.
曺永昌 논설위원 cyc5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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