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무 번째 생일을 맞는 차상은은 외모는 성숙한 아가씨지만, 정신연령은 초교 1학년 정도에 머물러 있다. 8세 영란이는 상은이의 단짝이자 친밀한 상담자다. 어머니에게 야단이라도 맞으면 영란이에게 일러주고, 그러면 영란이는 온갖 세상물정에 대해 또박또박 가르쳐준다. 상은이는 낮은 지능과 적응행동에 문제를 보이는 정신지체 장애자다. 상은이는 혼자서 머리를 묶을 줄도 모르고 발음이 어둔하고 자전거도 쉽게 배우지 못하고 동작이 어둔한 신경학적인 문제를 동반하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배종옥)는 딸을 부끄러워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딸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설명해주고, 누가 바보라고 하면 참지 말고 달라들어 물어뜯어라고 이른다. 아무리 선하게 살더라도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함이다. 어둡기 전에 귀가할 것, 일어난 일은 모두 엄마에게 말하기, 영란이에게 지지 말고 대들어 싸울 것, 그러나 곧 화해할 것 등 생존 기술에 대해 구체적으로 일러준다. 현실 적응력이 떨어지고 자기관리가 독립적이지 못한 딸이 어머니에게는 삶의 전부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불치의 암 선고를 받는다. '그럴 리가 없다, 뭔가 착오가 생긴 것이다.'라며 부정해보지만, 아무리 부인하더라도 객관적인 사실이 암이라는 것을 증명해 올 때는 억척스럽던 어머니도 무너지고 만다. '왜 하필 나인가.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온 나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가.' 하느님을 원망도 해보고, 차라리 병을 몰랐더라면 하는 후회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분노한들 병이 낫는 것도 아니고 딸이 보통 사람으로 될 리도 없다. 어머니는 자기연민에 빠질 여유조차 없다. 죽기 전에 딸의 남은 세월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통의경인 종범 오빠와 달콤한 사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상은이는 어머니의 병과 죽음을 통해 처음으로 삶의 무게를 느낀다. 이것은 그녀의 삶의 항로를 바꾸어 놓는다. 포장기술 자격증을 획득하여 취업을 하고 어머니가 꿈에 그리던 독립적인 생활을 이루어낸다. 상은이는 '정신지체'라는 종신형을 극복하고 삶의 진정한 구원을 얻어낸 것이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