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還穀과 부당수당

입력 2007-01-30 11:39:32

고구려 고국천왕은 재상 을파소의 건의에 따라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해 賑貸法(진대법)을 제정, 실시했다. 이는 흉년이나 춘궁기에 관청의 양곡을 빈민에 꿔 주고 추수기에 환수하던 賑恤(진휼)제도다. 고려시대에는 還上(이두 표기로 '환자'로 읽음) 제도로 계승돼 태조 때 흑창을 설치한 이후 점차 그 규모가 커지면서 의창'상평창 등을 설치해 진휼 사업을 이어갔다. 조선시대 때는 還穀(환곡)이라는 제도가 시행됐다.

◇三政(삼정)의 하나로 불릴 만큼 환곡은 대표적인 제도였지만 본래 목적과 달리 고리대로 변질돼 많은 민폐를 끼치기에 이른다. 환곡은 본래 빌려준 만큼 회수해야 하지만 명종 때는 새나 쥐가 먹어 없앤 부족분을 보충한다는 명목으로 1할의 이자 즉 '耗(모)'를 받았고, 모의 1할을 '會錄(회록)'이라 하여 호조의 장부에 기입하고 나머지는 해당 지방관의 경비로 충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환곡은 진휼이라는 취지에서 벗어나 지방관아와 중앙정부의 재원을 채우는 기능으로 변질됐다. 굶주린 백성을 보조하는 기능은 퇴색되고 농민을 수탈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조선 후기로 들면서 환곡의 폐단이 더욱 심해졌는데 고리대는 말할 것도 없고 강제배당에다 이웃'친척에 징수하는 代徵(대징)까지 나타났다.

◇그런데 환곡을 통해 가난한 백성들을 수탈하는 아전들의 수법은 참으로 기상천외하다. 다산 정약용은 그 수법을 열두 가지나 열거해 환곡을 빌미로 한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아전들이 곡가의 시세가 높을 때 방출한 후 그 차익을 챙기는 번작(反作)이나 묵은쌀을 내주고 햅쌀은 관리가 착복하는 執新(집신)이 대표적인 수법이다. 또 半白(반백)'私昆(사곤)'增 (증고) 등 행위가 성행해 백성들의 고혈을 짜냈다.

◇수원시 공무원들이 지난 5년간 초과근무시간을 대리 기재하는 수법으로 무려 330억 원이 넘는 부당 수당을 챙기다 적발됐다. 환곡을 둘러싼 조선조 관리들의 '제 배 채우기' 수법과 전혀 다르지 않다. 8시에 퇴근하고도 11시까지 근무한 것으로 속여 매달 평균 24만 원을 더 받아갔다는 것이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이 같은 착복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환곡도 울고 갈 수법이다. 요즘 관리들의 비리를 열거한다면 과연 몇 가지나 될까?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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