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는 무슨 제도? 아이 장래가 달린 문제인데!' 일반계고 합격자 발표 후 자주 걸려오는 전화다. 일반계고 전형에서 불합격했을 경우, 실업계고 추가 모집에 지원할 수밖에 없다는 대답에 나온 반응이다.
그러면 타 시·도 소재 고교로 진학해도 되느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 안타깝지만 그렇게도 할 수 없다.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81조(입학전형의 지원)에 보면, '고등학교 입학전형에 응시하고자 하는 자는 그가 재학한 중학교가 소재하는 지역의 1개 학교를 선택하여 당해 학교의 입학전형 실시권자에게 지원하여야 한다.'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또 실업계, 일반계 전형에서 모두 불합격하면 갈 곳이 마땅찮다. 학력 인정 평생 교육 시설에 지원하거나 재수를 할 수밖에 없다. 재수를 해도 내신 성적은 확정되어 있으니, 다음 해에도 일반계 고교로 갈 확률은 거의 없다.
의무 교육 기간이던 중학교까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실, 어느 학교에도 갈 곳이 없어졌다는 사실에 학부모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고등학교 교육은 지원자의 희망을 모두 수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두고 '제도를 바꾸라'고 호통 치는 분들도 계신다.
중학교 졸업생 수와 고등학교 모집 정원은 거의 1대1에 가깝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사회 전반의 학력 인플레 현상과 실업계 기피 현상 때문이다. 소질과 적성을 무시한 성적 중심 진학 지도 때문이다.
현재 고교 입시는 평준화 제도에 기반을 두고 있다. 과거 고교 선택 지원 입시 제도를 운용할 때, 중학교 교육에서 일류병, 과열 경쟁, 재수생 양산 등의 문제가 불거졌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1974년 서울, 부산, 1975년 대구, 인천, 광주 등에서 평준화 제도가 시행되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21세기 들어 '수월성 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평준화 제도가 하향 평준화, 획일적 교육 등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받고 있다. 특히 평준화 제도는 학생의 학교 선택권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큰 약점이 있다.
대구는 시 전체를 2개 학군으로 나누고, 고등학교별 모집 정원 40%를 학군내에서 지원 희망 학생을 대상으로 무작위 추첨 배정한다. 나머지 60%는 주소지를 기준으로 교육감이 임의 배정한다. 전체 학생들의 편의를 기준으로 배정하다 보니 집 앞에 학교를 두고도 버스를 타고 한참 가야 하는 학교로 배정될 수도 있다.
개인으로 볼 때는 너무나 불합리한 제도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근거리 학교로 배정하면 사각 지대에 사는 학생들은 더 멀리까지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기 등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무작위 추첨 배정을 하는 것이다.
배정 담당자는 학생들의 통학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버스 정류장, 지하철 정거장, 도보 시간 등 세밀한 부분까지 고려하여 배정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한다고 들었다. 2월 2일 배정 발표일, '나'보다 '우리'를 생각하는 성숙한 시민 의식을 발휘해야 할 때다.
박정곤(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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