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이 살만한 곳에 뱀이 살지 않는 곳은 없다. 뱀은 수천만 년 만에 지구상에 가장 널리 퍼져 사는 생물학적으로 성공한 생명체라 일컫지만, 그런 뱀보다 더 널리 퍼져 사는 생명체가 있다. 바로 인간 '호모사피엔스'이다. 아프리카 대륙 동부에서 고행 길을 나선지 2백~ 3 백만 년 만에 지구 전체에 퍼져 산다.
우리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동으로 동으로 수억만 리 이동하여 한반도에 지금 머물고 있을 뿐인 호모사피엔스의 후손이다. 1만5천여 년 전, 그 동쪽에 큰 물 덩어리가 길을 가로막아 이곳 한반도에 눌러앉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책 제목처럼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이 궁금해진다. 동쪽은 어둠을 물리치는 태양이 솟아오르는 곳,
그곳에 태양이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한 '그곳'이 바로 한반도 동쪽에 자리 잡은 큰 물 덩어리 '동해'인 것이다.
동해는 태초부터 인류 모두가 동의하는 '생명의 근원, 태양이 존재하는 곳'이다. 생물학자들이 말하는 인류와 지구 생명체를 부양하는 광합성(光合成) 과정도 아침 해가 솟아오르면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태양의 위대한 힘 때문에 애당초 호모사피엔스는 태양신을 절대적이라 굳게 믿었던 것이다. 태양이 사라진 서쪽 바다의 어둠은 죽음을 부르는 블랙홀이며, 태양이 솟아오르는 동쪽 바다는 꿈과 희망을 낳는 어머니인 것이다.
동양의 오리엔트(orient), 기원의 오리진(origin), 동쪽의 오스트(ost-영어의 east) 등은 태양이 솟아오르는 맨 처음 시작의 동(東)의 의미를 포함한다. 그러니까 동해의 동은 서쪽 방향에 대응되는 의미를 훨씬 초월하는 살아숨쉬는 생명 논리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사는 땅의 동쪽에는 수많은 바다가 존재하지만, 지구상 어디에도 동해라고 부르는 바다는 없다. 유라시안 대륙 동안(東岸) 한반도의 동해(Tonghae 또는 East Sea)가 유일하다. 생명을 품에 안은 태양은 하나이지 결코 여러 개일 수도 없고, 그런 태양이 솟아오르는 곳도 한 곳 뿐이다.
첨단 르네상스 과학은 북(N)을 기준으로 지도를 그리며, 사방에서 들려오는 뉴스 N·E·W·S(북·동·서·남)라는 단어도 북쪽(N)부터 시작하지만, 우리 육신의 깊숙한 곳 어디에서는 아직도 호모사피엔스의 동(E)의 생명논리가 흐르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동으로부터 시작하는 '동서남북'이며, 반가운 소식을 맞이하기 위해서 사립문과 동구(洞口)는 동쪽으로 열어둔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불길한 기운은 숲으로 가리고 막는다. 동녘의 눈부신 아침 햇살은 붉다 못해 새까맣고 하얗다.
눈부신 하얀 태양을 품에 안은 백두산·태백산·소백산 등등, 흰 백(白) 자가 새겨진 땅들은 우리가 사는 한반도의 등줄기이다. 유라시안 대륙 동단 한반도에 한 포기도 자생하지 않는 무궁화, 그 무궁화를 하얀 옷을 입고 사는 동쪽 나라의 백의민족, 동의민족은 지극히도 사랑한다.
무궁화 꽃은 동녘의 아침 햇살에 비칠 때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우며 생명탄생을 연출한다. 하지만 다가올 어둠의 두려움을 이겨낼 도리가 없는 듯 서산 해가 기울기 전에 꽃잎을 닫아버린다. 그래서 호모사피엔스들도 태양에 순종하면서 생명의 잉태와 탄생을 연출하는 무궁화를 사랑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호모사피엔스의 전통을 잇는 인류 문화의 원형을 계승하고 있는 증거들이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동해는 본시부터 그런 호모사피엔스의 동해인 것이다. '한국해'·'조선해'·'평화의 바다'·'우정의 바다'·'청해' 등은 알량한 논객들의 합리적인 담론으로 위장된 소음일 뿐이며, 동해의 정체성을 크게 훼손하는 퇴행천이이다.
엊그제처럼 느껴지는 20세기 초, 동해의 독도 바다사자를 멸종시키고서 독도를 강탈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들의 '일본해'는 유치한 형이하학적 잡음에 불과하다. 그래서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은 아직도 진행형인지도 모른다. '.../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김종원(계명대 생물학과 교수)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