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의 그늘' 낡은 터전 떠나는 홀몸 노인들

입력 2007-01-26 09:55:59

"돈 한푼 없는데 아파트 어떻게 살아…"

25일 대구 남구 대명2동 지하철 2호선 교대역 인근. 좁은 골목 어귀에 문이 떨어져 나간 집들이 을씨년스럽게 자리잡고 있었다. 주택재개발사업이 진행 중인 이 곳은 이미 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된 상태. 지난해 11월 관리인가처분이 내려졌고 건물 철거와 착공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진 모(83) 할머니는 아직 동네를 떠나지 못했다. 35년 동안 살아온 집. 혼자 사는 진 할머니의 유일한 재산이자 생계 수단인 낡은 한옥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6·25 전쟁에 참전했던 남편은 살아 돌아온지 1년 만에 아들 하나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지. 온갖 고생을 하면서 마련한 이 집에서 아들을 키우고 대학까지 보냈어." 오래된 기억을 더듬으며 진 할머니는 눈물부터 쏟아냈다. 진 할머니는 6개의 방이 딸린 이 집에서 각 10만 원 남짓한 월세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한달 70, 80만 원이 할머니가 올리는 수입의 전부. 아들은 IMF의 폭풍 속에서 실직한 뒤 최근에야 직장을 얻었다고 했다. "아파트는 거저 준다고 해도 못 살아. 수입도 없고 돈 한푼 없는데 관리비를 어떻게 내면서 살아."

20년 째 살아온 집을 비워줘야 하는 심모(72) 할머니도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혼자 살아온지 벌써 30년. "노인들이 죽고 나면 열흘이나 한달이 지나서야 발견된다고 하잖아. 그렇게 되기 싫어서 세입자들에게 '아침에 내가 안 일어나면 확인해 달라'고 부탁하며 살고 있지. 이제 그마저도 어렵게 됐어." 심 할머니의 60평 한옥의 감정가는 1억 9천500만 원이지만 전세금을 돌려주고 대출금 등 빚을 갚고 나면 손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사채를 쓴 탓에 집도 벌써 가압류돼 있는 상황.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재산은 아무것도 없어. 재개발이 시작되면 당장 노숙자가 될 처지야. 이제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 심 할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해 6월 대구시의 도시·주거환경정비계획에 따라 273곳이 정비사업 대상으로 지정돼 대구 시내 전역에 재개발·재건축 바람이 불고 있지만 그 그늘은 너무나 깊다. 낡은 가옥을 뜯어내고 삶의 질과 도시 미관을 개선하겠다는 의도지만 누구나 개발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 할머니처럼 오랜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노인들에게 재개발은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다. 아파트에 입주할 경제적 능력도 없고 세를 놓으며 생계를 잇던 노인들의 수입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인들이 떠나지 않을 방법은 없다. 주택재개발의 경우 토지 또는 건물 소유주 중 80% 이상이 동의하면 아무리 반대한들 소용이 없기 때문. 이 지역 역시 토지 또는 건물 소유주 258명 가운데 10명만 재개발에 반대, 재건축조합과 명도 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반대 주민들이 승소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현행법 상 소송이나 협의매수, 공탁 등을 통해 재개발 사업의 진행이 가능한 탓이다.

특히 오래된 주택가가 많은 대구 남구의 경우 정비예정구역은 모두 54곳으로 주택재개발사업 예정지는 8개 구·군 중 가장 많은 27곳에 이른다. 이미 12곳에서 재건축조합이 설립됐고 32곳에서 주민추진위원회가 설립됐다. 남구청 관계자는 "주택가의 경우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노인들이 많지만 당장 삶이 막막해진 노인들을 위해 대책을 마련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사연이 안타까운 분들이 많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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