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진이 만난 사람들] 마에스트로 정명훈

입력 2007-01-25 16:04:26

마에스트로 정명훈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서울시립 교향악단 측은 지휘자 정명훈이 싫어하는 것으로 인터뷰, 사진촬영, 오디션 이 3가지라고 했다. 그래서 좀처럼 기자를 만나지 않으며 최근엔 공연 일정이 빠듯해 시간을 내기도 어렵다고 했다. 굳이 원한다면 간접 인터뷰는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서울시립 교향악단에 질문서를 보냈는데, 돌아온 답은 '차라리 직접 물어보세요.'였다. 대신 묻기 난감한 질문이 끼여 있었던 때문이다.

정명훈은 이 달 15일 '정명훈과 함께 하는 신년음악회'를 위해 대구시민회관을 방문했다. 텔레비전이나 사진으로 보았던 것 보다 훨씬 굵은 주름을 갖고 있었는데, 마치 말 탄 무사처럼 강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공연 앞이라 굳은 것일까? 정명훈은 차라리 헤맬지언정 길을 묻기 어려울 만큼 단호한 인상이었다. 목소리는 굵었고, 서울 말씨와 비슷했지만 우리나라 어느 도시 말투라고 규정하기 힘든 억양을 썼다. 말에는 수식어가 거의 없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기를 원했고, 답변도 그렇게 했다.

정명훈은 처음 만났을 때도, 인터뷰를 마친 후에도, '안녕하십니까?' 혹은 '안녕히 가세요.'라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런 태도가 외국 생활을 오래 한데서 비롯된 것인지, 공연시각이 임박해 마음이 바빠서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정명훈이 무척 다감하고 부탁을 거절 못하는 편인데, 최근 잇따른 공연에 따른 피로와 감기 때문이라고 했다. 12월부터 1월초까지 11번의 공연을 했고, 링거까지 맞았다고 했다. 그렇게 듣고 보니 리허설 때 정명훈은 다감해 보였다.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기도 했고, 웃으며 혀를 쏙 내밀고,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피아노 연주자 김대진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리허설 때 주로 영어를 쓰던 모습은 그가 국제인임을 말해주었다.

◇ "섹시해 보인다는데, 알고 있나?"

'제가 아는 중년의 여성이 정명훈 선생님의 공연을 보고, (지휘모습이) 참 섹시하다고 하더라. 선생님은 자신이 그렇게 보인다는 걸 알고 있는가? 또 자신이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명훈은, 그것을 웃음이라고 해야할지, 가당치 않은 질문에 대한 허탈감이라고 해야할지 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래서 내가 인터뷰를 안 하는 거라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동행한 서울시향의 박효순 실장은 "음악적인 질문을 좀 하시지…." 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도 시간이 빠듯하시니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것이다. 양해 해 달라.'며 대답을 재촉했다.

"팝 음악의 스타들이나 뮤지컬의 주인공에게 열광하는 점과 비슷한 점을 말하는가? 제가 그렇게 보인다면, 아마도 우리 음악(클래식)이 특별히 훌륭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저를 그렇게 보았다면 그것은 저의 이미지가 아니라 클래식 음악의 힘일 것이다. 브람스의 교향곡을 듣고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명훈을 '섹시해 보인다.'고 말했던 여성은 "아마도 실력에서 나오는 매력일 것이다."고 했다. 세계 정상의 실력이 한 인간자체를 멋있어 보이게 한다는 말이다. 정명훈은 자신이 어떤 스타일의 지휘자인가에 대해 답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연주 때마다 지휘할 때마다 달라진다고 했다. 음악과 관객이 함께 어우러지기 때문에 관객의 분위기에도 영향을 받아 공연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정명훈은 자신은 작곡가가 아니며, 연주자는 작곡가의 음악을 그대로 살려서 관객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 "나는 언제나 2등인 사람이다."

정명훈은 전 세계가 박수를 보내는 마에스트로다. 그는 1974년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피아노 부문 준우승을 차지하며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그가 준우승하고 귀국했을 때 서울에서는 카퍼레이드가 펼쳐지기도 했다. 이후 이어진 화려한 수상경력과 재임 경력은 정명훈이 세계 정상임을 유감 없이 보여준다. 프랑스 '르 몽드'지는 그를 '영적인 지휘자'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런 정명훈이 놀랍게도 '나는 2등이 좋다.'고 말한다.

"우리는 음악의 메신저, 배달부이다. 우리가 할 일은 작곡가가 만든 음악을 '뜨거운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배경이 돼야 한다. 연주가는 늘 2등일 수밖에 없는데, (누군가의 뒤를) 따라가기 좋아하는 저의 성격에도 이 역할이 어울린다."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독자의 몫이지만 공연한 겸손이나 빈말은 아닌 듯 하다. 정명훈은 한 일간지에 쓴 칼럼에서도 '2등의 미'를 강조한 바 있다.

'2등이 1등보다 좋을 때도 많다. 나는 1등보다 2등을 많이 해본 사람이다. 나는 누나 정명화(첼로)와 정경화(바이올린)의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음악생활을 시작했고 지금도 반주를 사랑한다. 지난 해 오랜 음악 동료인 메조 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의 내한 독창회 반주를 맡았을 때도 계속 지휘를 하다가 오랜만에 피아노를 연주하니 마치 '음악휴가'를 떠난 것만 같아 즐거웠다. 혼자서 연주하는 '독주'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음악을 뒤에서 받쳐주는 '반주'이니 우선 2등이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브람스와 말러처럼 음악에서 1등은 언제나 작곡가가 차지한다. 연주자는 어쩌면 작곡가가 없으면 '일 없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연주자는 작곡가에 이어 늘 2등이다. 결혼한 뒤에는 언제나 아내를 따라 다니고 있으니, 결혼 생활에서도 (나는) 2등이다.'

정명훈은 같은 음악을 수 천 번 연주해도 지겹기는커녕 더 깊이 매료되는 것은 음악이 워낙 훌륭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훌륭한 음악인만큼 연주하면 할수록 더 깊은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렇게 훌륭한 곡들인 만큼 자신은 물건(곡)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또렷하게 말했다.

◇ "가족 같은 만남, 분위기, 요리 좋아"

정명훈은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이다. 요리책(디너 포 에잇 ; Dinner for 8)을 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요리를 '가족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를 초대하거나,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요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에게는 아내와 아들 셋이 있다. 외국에서 생활을 오래 한 만큼 정명훈의 요리는 고급 요리일 것이라는 짐작은 틀렸다. 그는 고급 요리엔 관심도 없고, 할 줄도 모른다고 했다. 그의 요리책에는 59가지 요리가 나와 있는데, 이탈리아 요리와 한국 요리가 주를 이룬다.

"패밀리 스타일이 좋아요. 레시피(Recipe-조리법)따라 하는 거 아니고, 그때 그때 마다 다르게 만들어요. 그러니까 맛도 느낌도 달라요. 대체로 이태로 요리를 자주 만드는데 특히 파스타를 자주 만들어요."

그는 요리든 인간관계든 가족적인 맛, 가족적인 분위기가 좋다고 했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사람이며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명훈은 요즘 개인적으로 특별히 힘든 시기라고 했다. 서울시향이 변모를 꾀하면서 오디션을 통해 새 단원을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새 단원을 뽑는다는 것은 가족이던 누군가를 헤어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음악은 가족처럼 해야 하는데…, 단원들과 가족처럼 해야 하는데, 그러고 싶은데….(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요즘은 특별히 힘든 시기다." 그는 콩쿠르 심사 맡는 것을 싫어하며, 음악 듣고 1,2,3 등 가리는 것도 어렵고 싫다고 했다. 음악은 그렇게 안 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한때 정명훈에겐 '가정 불화설'이 돌기도 했는데

서울시향은 이에 대해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했다.

"정명훈 선생님 공연 때마다 사모님이 오세요. 두 분이 손잡고 다니시다가 저희들 눈에 띈 적도 많아요." 정명훈은 아내와 올해로 27년째 결혼생활을 하고 있고, 연애기간까지 합치면 33년째 함께 하고 있다. 그의 요리책(디너 포 에잇)의 제목에 등장하는 8명은 정명훈 자신과 아내, 세 아들과 그들 미래의 반려자들을 말한다. 첫째 아들은 음악과 무관한 공부를 하고, 둘째는 재즈 기타리스트, 셋째는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아내와 자녀들 외에도 정명훈에게는 정트리오로 불리는 누나들(첼로 정명화, 바이올린 정경화)과 어머니 이원숙 여사가 있다. 어머니는 오늘의 정명훈을 있게 한 열정적인 후원자이자 정신적인 기둥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길에도 피아노를 챙겨갔을 만큼 어머니의 열정은 대단했고, 세간에 자녀교육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원숙씨의 자녀양육 일화를 담은 책 '너의 꿈을 펼쳐라'는 많은 학부모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 서울시향은 기대만큼 변했나?

정명훈이 2006년 서울시향 지휘를 맡으면서 공연 티켓요금이 2배 이상 올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서울시향은 '2007 신년음악회(3일)'와 '브람스 스페셜'(9일) 공연의 VIP석 가격을 12만원, 로얄(R)석을 10만원으로 책정했다. 지난해부터 정명훈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정기공연과 굵직한 주요 공연의 경우 VIP석과 로얄(R)석을 대부분 12만원과 10만원으로 매기고 있다. 국내 국공립 오케스트라 가운데 티켓 값이 10만원을 넘어선 것은 서울시향이 처음이다. KBS 교향악단 등 다른 주요 오케스트라 공연 최고가 티켓이 5, 6만원 선인 것과 비교해도 차이가 있다. 음악계 내부에서는 이를 두고 수준 높은 음악을 선보이기 위한 선택이란 의견과 서울시향의 공익목적에 어긋난다는 견해가 엇갈린다.

서울시향 관계자는 "정명훈 감독이 가격 결정에 어떤 영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고 공연 티켓요금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서울시향의 추구 목표는 공공성과 세계적인 공연 두 가지 모두이다. 현재 서울시향 개원 지휘자의 정기공연은 모두 3만원이다. 다만 정명훈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공연을 3만원에 맞추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정명훈 감독이 지휘한다고 하더라도 (시민들을) 찾아가는 공연은 모두 무료다. 서울시향 오케스트라는 단원만 100명에 이른다. 공익을 생각하지 않고 수익만 생각한다면 현재 수준의 공연은 어렵다."

정명훈이 서울시향을 맡은 뒤로 악단의 연주 수준이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는가하는 질문도 잇따른다. 정명훈은 이렇게 답했다.

"오케스트라는 꽃이 아니라 나무 같아서 자라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혹시 지금은 1위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베토벤과 브람스 교향곡 시리즈, '찾아가는 음악회'와 같은 연주를 통해 서울시향은 발전할 것이다."

◇ "음악 외에는 잘 잊어버리는 편이다"

"바이올린 하는 경화 누나는 한 살 때 일도 다 기억해요. 심지어 당시의 냄새까지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기억력이 나빠서 어릴 때 기억이 거의 없어요. 아마도 이런 습성은 연주생활 때문인지도 몰라요. 연주는 일단 하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에요. 오직 다음 연주에 대해서 생각할 뿐이에요."

정명훈은 지휘를 시작한 이후 성격이 훨씬 밝아졌다고 했다. 피아노를 치던 시절엔 만족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혼자 하는 연주이기 때문에 외곬처럼 굴기도 했다. 그러나 결혼하고 지휘 쪽으로 전향하면서 좀 못했다는 느낌도 줄어들었고, 좀 못했다 싶어도 너그러워지더라고 했다.

정명훈은 영국 런던필 객원지휘자, 프랑스 파리관현악단 객원지휘자, 독일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 수석지휘자, 이탈리아 피렌체관현악단 수석 객원지휘자 등을 역임했고 1989년 세계적인 오페라단인 프랑스 국립 바스티유오페라극장 음악총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맡은 바 있다.

정명훈은 4세 피아노를 시작, 3년만인 7세 때 서울시향과 협연을 할 만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 성인이라고 할 지라도 시향과 협연을 했다면 '뒷말'이 흔히 돌아다닌다. 권위 있는 오케스트라와 협연이 개인에게는 그만큼 영광일 뿐만 아니라 잡기 힘든 기회이기 때문이다. 일곱 살 먹은 아이가 서울시향과 협연을 했다면 그 아이가 어떤 재능을 가진 사람인지 알고도 남을 만하다. 정명훈은 당시 상황을 웃음과 박수로 기억하고 있었다.

"의자가 높아서 방석을 여러 장 쌓아올리고 저는 그 위에 앉았어요. 단원들은 물론이고 관객들도 의문시했어요. 너무 작은 아이가 피아노 앞에 앉았으니까 당연했겠죠. 피아노가 제대로 연주될까 걱정도 했겠지요. 그런데 피아노가 들어오니까(피아노 반주가 시작되니까) 전체 오케스트라가 웃으며 박수를 막 치더군요."

피아노로 시작해 지휘자가 된 사람 정명훈, 그는 늘 지휘보다 피아노가 편안하다고 말한다.

"지휘자는 무대에서 소리를 내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지만 소리를 내는 사람들보다 훨씬 복잡한 일을 한다. 전체를 컨트롤해야 하고, 단원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계획도 세워야 한다. 사실 이런 일은 '따라가지 좋아하는' 내 성격에는 맞지 않다. 지휘자치고 나만큼 '따라가기' 좋아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 마에스트로-대음악가·명지휘자·거장.

정명훈은….

1953년 서울 출생. 줄리어드 음악학교. ▲ 경력-국립교향악단 지휘자. 미국 뉴욕청년심포니 지휘자. 아시아필하모닉 상임지휘자.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 現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 지휘자. 라디오 프랑스 필 하모니 음악감독 겸 상임 지휘자. 도쿄 필 하모니 특별 예술 고문. ▲ 수상-차이코프스키 국제음악콩쿠르 은메달. 이탈리아 토스카니니상. 프랑스 국가훈장. 일본 아사히 음악상. 프랑스 드스코누벨 아카데미 선정 대상. 프랑스 브루노발터상 최고오케스트라 지휘자상. 금관문화훈장. 유네스코 서울협회 선정 올해의 인물. 제7회 호암상 예술상. 프랑스 클래식 음악의 승리상. 제1회 대원음악상 대상 등.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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