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사형제도 필요한가

입력 2007-01-25 10:45:57

人革黨(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한 무죄 선고는 사형제도의 野蠻性(야만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사건의 내용, 실체적 진실이 어떤 것이든 간에 중죄인이라고 사람을 잡아 죽여놓고 수십 년이 흐른 후에 무죄라니. 法(법)의 가치에 심각한 회의를 느끼게 하는 황당하고 기막힌 일이다.

유죄였다가 무죄로 밝혀지면 누구든 원상회복의 자리로 돌아가야 마땅하다. 그러나 죽은 사람에게 원상회복은 없다. 살아 돌아올 수 없고 살려 낼 수도 없다. 그래서 사형제도 폐지론은 절박하다.

아무리 과장 표현한들 지나치지 않은 것이 사람 목숨인데, 하물며 범죄인을 단죄한다며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서야 법의 이름을 빌려 자행한 살인이나 다름없다. 완전할 수 없는 사람이, 사람이 만든 틀에 걸어, 사람의 목숨을 거두게 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무모한 일이다. 게다가 인공적 환경에 영향을 받기까지 하는 현실에서 '사법 살인'은 상존한다 할 것이다.

더구나 인혁당 사건 경우는 사형을 선고한 바로 다음날 전격적으로 처형했다. '사법 살인'의 저의를 굳이 감추지 않은 유례없이 신속한 집행이었다. 살아서 가능한 재심의 기회, 죽음을 준비할 시간조차 박탈한 것이다.

무려 32년이 지나서 그들은 죄가 없다, 죽어서 안 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어떻게 할 것인가. 명예회복됐으니 잘됐다 할 것인가. 죽임을 당한 자는 간신히 사무친 恨(한)을 한 겹 지우고, 유족과 산 자들은 무거운 짐을 약간 덜어냈을 뿐이다. 원통함을 다소나마 풀어준 산 자들에게 죽은 이들은 무슨 말을 할까.

무죄 판결을 받아내기까지는 민주화에 힘입은 바 크지만 그것이 모두는 아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수사와 재판상의 불법 행위를 밝혀냄으로써 재심이 받아들여졌고 재심 청구 4년 2개월 만에 무죄 선고가 나왔다. 그 이전부터 遺族(유족)들과 일부 시민단체 등 산 자들의 피눈물나는 忍苦(인고)와 투쟁이 있었다. 30여 년 인생을 몽땅 쏟아 이미 白髮(백발)이 성성해진 유족들의 희생과 많은 관련 인사들의 치열한 조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억울하게 사형당한 또 다른 유족이 있다면, 이런 일을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끈질긴 관심을 모을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건이 아닌 일반 형사 사건의 억울한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보통 사람, 그들의 유족이 재심을 청구해서 무죄를 받아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해서 무리가 아니다.

그만큼 국가권력의 울에 싸인 사형제도라는 극한 고지는 높고 험하다. 그 난공불락의 고지를 극적으로 넘어선들, 숨진 목숨이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면 이대로 괜찮다고 할 수가 없다. 내일 새벽 당장 억울한 사형수가 집행을 당할 수도 있다.

사람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일부에선 민주화가 되면서 정치적 악용 소지가 없어졌다고 위험성을 부정하지만 사형이 정치적 음모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사소한 사법적 오판과 오용의 결과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

또, 일부에선 강력범죄 증가와 凶暴化(흉포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사형제도는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칫 타당하게 여겨지는 주장이지만 그 효과에 대한 통일된 견해는 없다. 분명한 것은 최종심에서 사형이 확정될 만한 흉악범은 극소수이고 이들의 흉포함은 이미 사형제도의 제어력 밖에 있다는 사실이다. 사형 대신 가석방이 불가능한 절대적 終身刑(종신형)을 도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세계적으로 사형은 反(반)문명적 형벌제도라는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사형제도를 폐지했거나 사실상 폐지한 나라가 이미 120여 개국에 이른다. 유럽연합(EU)은 사형제도 폐지를 가입의 전제로 삼고, 戰時(전시) 사형제도까지 금지키로 협약했다. 철의 장막 속 壓政(압정)의 종주국이었던 러시아도 지난 2000년에 사형제도를 폐지했다. 인혁당 사건의 희생자들은 모든 산 자들에게 사형제도에 대한 再審(재심)을 통렬히 요구하고 있다.

金才烈 논설위원 soland@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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