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 나의 삶, 김수학] 녹색혁명의 産室을 찾아

입력 2007-01-25 07:47:09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 내무부에 근무하던 나는 통일벼를 개발 보급한 金寅煥(김인환) 전 농촌진흥청장을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분으로부터 들은 식량문제는 지금도 마음에 새겨두고 있다.

김 청장은 배고픈 사람들에게 빵을 제공하는 일에 누구보다도 기여한 공로로 1970년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노만 볼로그(Norman E Borlaug) 박사의 인간적 의지와 업적을 자주 소개했다.

노만 박사는 "식량은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가져야 할 도덕상의 권리"라고 말했다. 조선왕조실록에 '民惟邦本 食爲民天(민유방본 식위민천)'이라는 말이 나온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식량은 백성들이 하늘처럼 여긴다는 뜻이다.

어릴 때 朝飯夕粥(조반석죽)의 세월을 살아온 나는 시골 마을을 자주 찾는다. 2006년 여름에는 동해안 주민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여기에서도 보릿고개의 고생담이 빠질 수 없다. 필자와 동갑내기인 한 할머니는 "지사님요, 나도요 통일벼 나오고부터 쌀밥 실컷 먹었고 보릿고개 한을 풀었어예."라고 말했다.

나는 문득 보릿고개 극복의 효시가 된 녹색혁명의 산실에 가고 싶은 충동에 빠졌다. 바로 농촌진흥청이다. 2006년 늦가을 지하철 수원역에서 내려 택시 편으로 진흥청으로 향했다. 온통 황금빛깔로 물든 들판을 보니 통일벼를 개발한 주역들의 幻影(환영)이 아롱거렸다. 진흥청 경내에 안장된 고 김인환 청장의 묘소를 참배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 3월 13일 농촌진흥청 강당에서 열린 식량증산 연찬대회에서 식량자급을 국가적 과제로 삼을 것을 지시했다. 농촌진흥청은 이 유시를 받들어 국제 미작연구소의 협력 하에 산학협동으로 획기적 다수확 벼 품종 15종을 개발 보급했다. 그 결과 1977년에는 쌀 생산 4천만 섬을 돌파하고 단보당 평균 수확량도 494kg에 달하여 세계 쌀 생산 역사상 최고기록을 수립했다. 1977년 12월 9일 전주 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된 전국 새마을 지도자대회 유시에서 박 대통령은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극심한 자연재해를 극복하고 연년세세 대풍을 이루어 획기적인 증산실력을 올릴 수 있었다."고 치하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박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20일 '綠色革命成就'(녹색혁명성취)라는 휘호를 내렸다. 이 휘호를 새긴 탑 전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그동안 우리는 쌀을 절약하기 위해 떡을 만드는데도 잡곡을 섞고 쌀로 술을 빚지 못하게 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식성을 달래가며 꾸준히 노력해 왔는데 그런 지 불과 몇 년 만에 이제는 쌀을 먹고 남을 만큼 되었으니 이야말로 '하면된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새마을 운동의 행동철학을 입증한 것입니다." 이 탑은 박 대통령으로부터 녹색혁명 성취 공로로 상을 받은 14명이 뜻을 모아 건립, 1978년 5월 10일 제막되었다.

탑 앞에 서서 이제 기억 속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보릿고개의 軌跡(궤적)을 잠시나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나는 가슴 속에 불이라도 붙은 듯 울컥 치미는 감회를 느꼈다. 녹색혁명은 엄연히 역사 속에서 역동하고 있으나 그때의 주역들의 땀과 눈물이 잊혀가는 현실이 가슴을 쳤다.

전 경북도지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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