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사건 억울한 희생·유족 고통은 누가…"

입력 2007-01-24 10:38:33

'인혁당 사건' 32년만에 무죄판결

"뒤늦게 역사의 진실이 밝혀졌지만 고인의 억울한 희생과 유족들의 고통은 어떻게 보상받나요."

2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이 1975년 4월 9일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단체 사건으로 사형당한 8명에 대해 사건발생 32년만에 무죄판결을 내리자 당시 삼촌 도예종 씨의 시신을 인계받았던 도한준(82) 씨는 금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당시 사형된 8명 가운데 부산·울산 출신인 김용원, 우흥선, 이수병 씨를 제외한 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여정남, 하재완 씨 등 5명은 모두 대구 출신이다.

한준 씨는 "무죄가 밝혀진들 고통스럽게 숨진 삼촌과 5남매를 홀로 키워야 했던 숙모의 한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겠느냐."며 그동안 겪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대법원은 '수차례 고문에 졸도'(도예종), '혹독한 고문에 탈장과 폐농양증'(하재완)이라고 상고 이유서를 보고도 모두 기각해 판결 뒤 20시간도 되지 않아 모두 사형당했습니다. 삼촌 시신을 넘겨받았을 때 시퍼렇게 멍이 든 엉덩이 부근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더구나 송상진 씨를 비롯한 몇 명은 고문 증거를 없애기 위해 사체를 태운 뒤 유골만 가족들에게 돌려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은 그대로 남은 가족들에게 전해졌다. 도 씨는 "못 먹고 못 배우고 빨갱이라고 남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며 평생을 살았고, 조카들은 초등학교, 중학교만 겨우 졸업해 고물상 심부름으로 생계를 꾸렸다."고 말했다. 또 삼촌은 칠곡 현대공원 묘지에 묻혔지만 '민주 투사'라는 글귀가 문제가 돼 비석이 뽑히는 수난을 당했고 도 씨를 비롯해 서도원, 송상진 씨 후배들이 세웠던 영남대 추모비마저 경찰에 철거됐다.

하재완 씨의 미망인 이영교(71) 씨는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들들은 '빨갱이 아들'이라고 놀림 받으며 동네 아이들에 의해 나무에 묶인 채 '총살' 놀이를 당했고, 소풍갔다가 친구들이 돌을 던지는 바람에 밥도 먹지 못했다."며 "무죄 판결이 내려졌지만 마음은 더 가라앉고, 가진자의 힘으로 한 가족의 행복을 무참하게 짓밟은 사람들에 대한 미움뿐"이라고 말했다.

이제 유족들은 국가가 나서 고인 및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46명의 유족들은 지난해 11월 국가를 상대로 340억 원의 손해 배상 소송을 청구했고, 무죄판결 뒤 관련 시민단체들도 유족들의 정치적·사회적 복권과 명예회복을 위해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계획이다.

림구호 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은 "고인들의 대구·경북 추모재단 발족을 계획하고 있다."며 "경북대, 영남대의 민주 동문 후배들 사이에서도 고인들을 기리는 다양한 추모 사업들이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인혁당사건 진상규명 명예회복 및 정신계승을 위한 대구 경북 추진위원회는 23일 오후 대구 중구 대구여성회 강당에서 성명서를 내고 대법원의 무죄 판결에 대해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함종호 추진위 위원장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무고하게 학살당한 이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위로 사업이 추진돼야 한다."며 "4월 9일 32주기를 맞는 '4.9 통일 열사' 추모 사업은 이들의 명예회복과 진실규명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추진위는 25일 오후 3시 경북 칠곡군 현대 공원묘지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추모행사를 가질 계획이다.

이상준·정현미기자

※인혁당 재건단체 사건=지난 1974년 유신정권이 긴급조치 4호를 발령한 뒤 "북한 지령을 받은 26명이'인혁당 재건단체'를 조직해 대학생들의 시위를 배후조종하고 국가 변란을 획책했다."고 중앙정보부를 통해 발표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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