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곱다. '고운사(孤雲寺).'
이름만 고운 게 아니라 산사(山寺)가 들어앉은 모양새도 '부용반개(芙蓉半開)'의 천하명당이다. 연꽃이 반쯤 핀 형국이다. 산등성이에 올라 절을 바로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신라말기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선생이 전국을 떠돌다 들어앉은 곳이 바로 경북 의성의 고운사다. 그는 이곳에서 비승비속의 삶을 살다가 고적한 구름처럼 종적을 감췄다.
고운사는 적막하다. 승속(僧俗)의 구분이 없다. 때가 되면 예불을 올리고 공양을 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밖에 없다.
하긴 어느 산 어느 절을 가든 다 마찬가지겠지만 고운사에 가면 가끔씩 머리깎고 중이 되고 싶은 충동을 느낄 지 모른다. 山寺에 가고싶은 건 다 인연이 있기 때문 아닐까. 그럴 땐 스스럼없이 스님을 만나 가지런히 두손모아 합장해보자.
26년전. 고운사를 찾은 한 청년은 산사의 분위기에 이끌려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노스님이 던진 '언제봤던고'라는 화두에 그는 화들짝 놀라 산문을 벗어나지못하고 머리를 깎았다. "내가 중이 될 줄은 몰랐지." 스물다섯 청년은 25년만인 지난 해 고운사의 주지자리에 올랐다. "흘러가는 물을 막으면 물은 뒤로 빠졌다가 잠시 후 다시 내려갑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물길을 막으면 아예 흘러가길 포기하거나 둑을 뚫고 지나고자 할 정도로 극단적이 됐습니다." 우리시대에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 갈등은 일상화됐다.
산사에 들어앉아 있는 호성(昊星) 주지스님도 세속의 이치는 다 안다. 그래선가 스님 역시 불가의 인연을 맺은 후 고운사에서 출가시킨 대중이 4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불자(佛者)든 불자가 아니든 절에 오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습니다." 경북 의성군 단촌면소재지에서 20여km를 구비구비돌아 등운산자락에 자리잡은 고운사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그러나 산문에서 일주문에 이르는 1km 남짓한 소나무 숲길을 걸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비포장 숲길이 맘에 들지않는다면 아예 오른쪽에 난 '천년송림체험숲길'로 접어드는 것도 괜찮다. 세속을 벗어날 수도 있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반쯤 눈을 감고 천년을 이어온 바람을 느껴보자. 운이 좋다면 1천5백여년전 이곳에 머물렀다 바람처럼 떠나간 고운선생과 의상대사의 체취를 만날 수도 있다. 산사로 이어진 길에서 자각과 자기참회마저 느끼지 못한다면 절이 그곳에 자리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고운사는 스스로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데 제격이다.
주지스님은 세상얘기를 계속했고 기자는 세상을 떠난 얘기에 몰두했다. '고운사는 그런 경계에 있다.'
일주문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가운루와 우화루가 한꺼번에 보인다. 단청이 벗겨져 빛바랜 '일주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판을 받을 정도로 우뚝하다. 무시무시한 금강문과 사천왕상을 보지않고 옆으로 돌아가도 좋을 정도로 길은 넓다.
계곡을 가로질러 가운루(駕雲樓)가 서있다. 물길위에 기둥을 세웠고 계곡속 바위가 초석이다. 이처럼 자연과 하나된 건축물이 있을까 싶다. 물길을 막지도 않고 흘러가도록 내버려둔다.
지금 고운사가 '상생'의 도량으로 다시 이름을 내세우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절에서는 공양만큼 즐거운 시간도 없다. 대웅전이나 법당에서 만난 부처의 눈길에 마음을 졸였더라도 '절밥'한그릇이면 배뿐 아니라 마음까지 푸근해진다.
시레기 된장국과 김치 한사발, 그리고 고사리 등 각종 산채로 비벼먹는 밥한그릇을 맛보지 않고는 산사의 깊은 맛을 볼 수 없다. 하긴 공양채바깥 '만덕당' 시렁 위에는 겨우내 먹을 시레기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가끔씩 스님들이 좋아하는 떡볶이와 표고버섯탕수육이라도 얻어먹으면 행운이다. 아직도 고운사의 인심은 후하다.
고운사에 가면 세가지는 반드시 하자. 산문에 도착하면 일주문에 이르는 1km를 걸어서 가자. 그래야 잠시나마 세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 스님을 만나면 합장기도하고 차 한잔 청해보자. 그리고 시간에 구애받지말고 공양채 보살님을 찾아 절밥 한 그릇 청해보라.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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