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까지만 해도 어엿한 미용실 '사장님'이던 대리운전기사 A씨(37). 지난 2005년 견인차량 기사를 그만둔 뒤 새로운 사업을 물색하던 중 그에게 솔깃한 제안이 들어왔다. 대구 동구 방촌동 아파트 밀집 지역에 미용실을 차리면 꽤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 사업 초보였던 그는 한 달 수입이 400만~500만 원은 된다는 전 주인의 말만 믿고 1천500만 원의 권리금을 내고 가게를 인수했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했다. 손님은 예상에 훨씬 못 미쳤고 수입은 매월 60만 원을 넘지 못했다. 더구나 전 주인이 불과 한 달 전에 가게를 인수했고 권리금도 700만 원 밖에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용실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생각에 A씨는 자신의 승용차를 팔고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가며 버텼지만 결국 1년 만에 3천만 원이 넘는 빚만 진 채 가게문을 닫아야 했다. A씨는 "전 주인이 마치 손님이 많은 것처럼 꾸민 뒤 권리금을 높게 불렀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았다."며 "결혼과 내 집 장만의 꿈을 안고 전 재산을 쏟아 부은 가게가 공중분해돼 삶의 의욕조차 잃었다."며 울분을 토했다.
소규모 상가를 대상으로 한 '권리금 장사꾼'들이 설치면서 서민들에게 시름을 더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권리금이 싼 점포를 인수, 손님을 끌어 모은 뒤 한두 달 만에 높은 권리금을 받고 다른 이에게 가게를 넘겨 차익을 챙기는 전문 브로커들이 적지 않은 것. 이들이 주로 실직이나 해고 등으로 일자리를 잃은 뒤 창업에 뛰어든 '초보 사장'들을 목표로 삼는 탓에 서민들의 재기 의욕조차 꺾고 있다.
2년간 운영하던 식당을 넘기기 위해 생활정보지에 광고를 냈던 박모(38·여·경북 경산시) 씨도 비슷한 경우를 당했다. 40대 여성이 다짜고짜 계약금을 싸들고 와 당장 가게를 넘기라고 종용했던 것. 어렵다고 통사정해 원래 내걸었던 권리금 1천만 원보다 낮은 750만 원에 가게를 넘겼지만 그 여성은 불과 한 달 뒤 1천200만 원의 권리금을 받고 가게를 되팔았다. 박 씨는 "연락을 하니 전화번호가 바뀐 뒤였다."며 "중간에서 브로커만 돈을 벌고 진짜 서민은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호프집이나 식당 등 업종별로 권리금 매매만 전문적으로 연결해주는 브로커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무자격자가 대부분이지만 권리금 매매 알선은 공인중개사 자격이 없어도 가능하기 때문에 적발되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 대구 수성구 B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가게를 인수하기 전에 주변 상가들의 권리금 시세와 매상 등을 면밀히 따져 과도한 권리금을 요구하는지 여부를 본인이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고 충고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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