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왕의 인물산책] 이재용 건보공단 이사장

입력 2007-01-22 07:25:04

이재용(李在庸·53)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홍길동' 같다. 오전에 서울 행사장에서 만났는데 오후 대구행사에 또 나타난다. 행사에 참석해도 체면치레로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참석자와 일일이 인사하고, 악수하고, 포옹한다. 시간이 허락하면 2차, 3차 술자리에도 빠지지 않는다. 이사장실에 대구·경북 지인들이 넘쳐도 절대 피곤하거나 싫다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의 빼곡한 일정을 보면 가히 '철인'이다 싶다. 그런 이 이사장도 지난해 10월 병원 신세를 졌다. 직원 체육대회에 참석해 2인 3각, 줄넘기 등 온갖 게임에서 뛰고 마지막 축구선수로도 용감하게(?) 나섰다가 상대선수의 깊숙한 태클에 넘어지며 머리를 부딪쳐 잠시 정신까지 잃는 변을 당한 것. 병원에서는 입원하라고 권했으나 그는 체육대회 장소로 되돌아가 마지막 마무리 인사말까지 하고 퇴근했다.

이처럼 직원들과 몸으로 부대낀 덕분인지 이사장으로 부임한 지 겨우 4개월이지만 많은 직원들이 그에게 마음을 연다. "직원들이 이메일로 많은 제안을 해 옵니다. 직원들이 저를 신뢰하지 않거나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면 이메일이 줄어들 텐데 계속 늘어나는 것을 보면 괜찮게 평가하는가 봐요."

국민건강보험공단 노조와 직원들이 이처럼 빨리 이 이사장과 호흡을 맞춰 나가는 것을 보고 주변에서는 '신기하다'며 놀라워한다. 워낙 드세기로 소문난 노조로 이사장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이사장에게 승복한 일화(逸話)는 또 있다. 지난해 말 이 이사장과 함께 소록도로 간 '건이강이 봉사단' 단원들은 깜짝 놀랐다. 이 이사장이 한센병 환자들과 음식과 술을 나눠 마시고, 러브샷(팔을 걸고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을 하는 것은 물론 뽀뽀까지 하는 등 한가족처럼 너무 격의가 없어서다. 한 단원은 '정말 충격적'이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들 단원들은 이 이사장이 24년 동안 소록도의 친구인 '참길회'의 회원이라는 사실을 알 턱 없고, 오는 2월 2일 후원의 밤 행사가 공단에서 열리게 된 연유도 몰랐을 게다.

"처음 와서 보니 지역, 직장 등 4개 조직이 모여서인지 화학적 결합이 안 돼 있었어요. 내부가 분열돼 있는데 어떻게 바깥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겠어요? 합리적인 인사, 직원과 끊임없는 대화로 상호 신뢰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이 이사장이 또 신경 쓴 부분은 외부기관의 신뢰 회복. "우리 기관이 왕따가 돼 있었어요. 관련 기관과 부처 관계자를 만나 공단을 설명했지요. 이제 공단의 일을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는 우호 세력이 적잖게 형성됐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사장은 공단의 약칭을 '건보'가 아니라 '국보'로 부른다. 국보처럼 귀중한 공단으로 바꿔놓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국민이 치료비 때문에 극빈층으로 전락하거나,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없는 나라가 돼야 합니다. 의료보험 재정지출 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서 재정을 안정적 기반 위에 올려 놓는 일도 미룰 수 없습니다. 재정지출 구조 합리화 속에는 부당의료 청구와 의료 오·남용을 제도적으로 막는 방안도 포함될 겁니다."

'국보'의 올해 주요 업무에는 대구가 큰 관심을 보이는 노인수발보험 시범 사업과 콜센터 설립이 포함돼 있다. 노인수발보험 시범 지역은 의성, 안동 등 전국 8개 지역이 지정돼 있고, 올해 추가로 대구 등 광역시 5개 구를 지정할 예정이다.

콜센터는 1, 2곳에 설립될 예정인데 대구, 광주, 부산 등지가 경합 중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이미 3번이나 국보에 왔다가 갔고, 대구시도 김범일 시장, 박봉규 정무부시장이 다녀갔다. 이 이사장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맞붙었던 김 시장의 방문과 관련, "경쟁할 때는 경쟁하고 일할 때는 일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고 반문하고, "콜센터는 지자체가 인센티브를 많이 줘 직원들이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지역에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올해부터 특강 등 외부 행사 참석 기회를 더욱 늘릴 계획이다. "국보가 튼실해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지지와 신뢰이기 때문에 국민에게 더욱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이 이사장은 특히 현재 추진하고 있는 의료보험제도 개혁은 '참여정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로 본다. 국회에 11개 개혁 법안이 계류돼 있다.

"법안 마련으로 제도를 개혁하는 것은 1단계입니다. 혁신적인 제도를 안정화시키고 국민들의 수용성을 높이는 작업이 계속돼야지요. 이사장 임기가 2년 반 정도 남았는데 어쩌면 너무 짧은 기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결국 올 연말 대선과 내년 4월 총선 등 주요 정치 일정 속에서 다시 정당으로 돌아가 역할하는 대신 국보 이사장으로서 의료보험 제도 개혁에 매진하겠다는 것이다.

치과 의사 출신으로서 대구 남구청장-대구시장과 국회의원 출마-환경부장관 등을 거치며 오랫동안 외도하다가 모처럼 자신의 전문 분야로 돌아간 이 이사장의 향후 역할이 주목된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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