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유일 순수 아마추어 '로얄패밀리 여자야구단'

입력 2007-01-20 07:29:32

"난 야구한다.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 치고 달리고 훔치고, 장쾌한 홈런까지 기대한다."

일요일인 지난 7일 오후, 대구시 남구 대명동 남도초교 운동장에서는 10여명의 아리따운 '야구선수'들이 모여 야구연습에 땀을 흘렸다. 몸을 풀고 러닝훈련에 이어 배팅과 포구, 송구 및 외야수비 등 연습하는 모습이 프로선수들 못지않다. 주장이 친 공이 프리배팅을 지도하던 감독에게로 곧장 날아갔다. 피한다고 몸을 돌렸는데도 등에 맞았다. 소리도 못지르고 주저앉는다. 연습은 어둑어둑해질 무렵인 5시가 지나서야 겨우 끝났다.

야구를 하기에는 약해보이는 갸냘픈 몸매의 대구 여자들이 야구 때문에 뭉쳤다. 대구 유일의 '로얄패밀리여자야구단' 선수들이다.

얼핏 보기에도 앳된 모습의 이은정(25) 씨가 피칭연습에 나섰다. "내가 이렇게 야구를 하게될 지는 상상도 못했어요." 하지만 외모 만으로 실력을 판단해서는 큰 코 다친다. 그녀는 에이스급 투수다. 포토에디터인 그녀 외에 호프집사장, 태권도장 관장, 간호사, 치위생사, 물리치료사, 대학생 등 15명이나 되는 로얄패밀리여자야구단원의 직업은 다양하다. 매주 일요일 연습때는 10여명 정도밖에 나오지 못하지만 중요한 경기일정이 잡히면 총출동한다. 나이는 20대가 주축. "우리 팀이 아마 전국 여자야구단 중에서 가장 키가 작을 거예요." 야구를 하기에는 도무지 맞지않는 신체조건인데도 씩씩하다.

로얄패밀리여자야구단 역사는 짧다. 지난 2005년 4월, 야구를 하고싶은 대구여자 3명이 인터넷카페를 만들어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다. 로얄패밀리야구단(남자)의 도움을 받아, 로얄패밀리여자야구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난 해부터 부산지역의 여자야구단 3팀과 영남권연합올스타팀을 구성, 전국대회에 출전도 하고 정기교류전을 가진데 이어 올해부터는 '영남권여자야구리그'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지난 연말 팀체제를 새로 정비하면서 감독직까지 신설했다.

이들 중 야구를 제대로 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야구를 너무 좋아한다는 이유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500원짜리 동전을 넣는 시내 배팅연습장에서 한 두번 이상은 배트를 휘둘러본 적이 있는 여자들이다. 감독을 맡고있는 김세인 씨는 "가끔 동촌유원지에 있는 배팅연습장에 가서 마구 배트를 휘두를 때도 있어요. 그곳 사장님도 우리 야구단 팬이라서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야구는 굉장히 시작하기가 어려운 운동인 것 같아요. 막상 가입하면 유니폼을 맞춰야 하고 글러브와 스파이크화 등 개인용품은 모두 스스로 장만해야 하거든요. 값이 만만찮아 여자들이 선뜻 사서 시작하기가 어려워요."

지난 해 10월 가입한 막내 김소연(21. 대구교대2년) 씨는 아직 모든 개인장비를 갖추지 못했다. 고가의 장비가 학생인 그녀에게는 부담이다.

"시합할 때는 이를 깨물고 해요. 승패에 관계없이…. 그러나 시합할 때가 제일 행복해요. 함께 뛰고 달리고 치고 팀워크가 잘 될 때는 정말 기분이 좋고 상대팀이 잘 때릴 때도 함께 박수쳐주기도 해요." 감독은 '승패에 관계없이'란 말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실력이 형편없는 것은 아니다. 영남권 여자팀 중에서 2위에 랭크돼있다. 최강 '빈'과도 2승2패의 호각지세를 이뤘다. 그러나 실제수준은 리틀야구팀 정도라고 생각하면 맞을 것 같다. "우리는 약해요. 그렇다고 남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호락하지는 않아요. 한번 붙어볼까요? " 남자팀이든 누구든 언제든지 O.K다.

걱정이 있다. 서울이나 부산 등 다른 지역과 달리 여자야구동호인의 저변이 대구는 너무 좁다. 20명이상이라도 되면 자체 청백전이라도 수시로 치를 수 있을텐데 선수들이 절대부족하다. 재정적으로도 어렵다. 회비로는 연습장 임대비용 만도 빠듯하다. "대구지역을 연고로 하는 프로구단과 성인야구 팀에서 야구저변 확대를 위해서라도 여자야구에 관심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야구라는 같은 취미를 가진 여자들이 모였다는 것만해도 대단하지 않나요?"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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