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송재학(52)의 수정체는 남들과 다른 것 같다. 마치 거대한 돋보기를 하나 덧 댄 것처럼 그것만 지나면 사물은 거대한 풍경이 된다.
'.../전기톱날이 갈당갈당한 목이 아니라/이빨인 옹이에 박히면서/밀도살꾼 형제의 후회가 시작되었다/단단한 수피 속의 짐승은 음전했지만/톱밥이 순교하는 피처럼 허옇게 튀면서/빗줄기마저 우왕좌왕이다/...'('소나무라는 짐승') 무심한 나무마저 천둥 같은 포효를 터뜨리며 하늘을 뚫는 풍경(이미지)으로 그려낸다. '산', '동백', '소래 바다는', '일출' 등의 시들도 그렇다.
그는 "산 아래 흘러내린 잔돌이 모두 산을 닮았다."고 했다. 마음속에 개울물 소리가 있기에 우리는 개울물 소리를 듣는다. 이를 "내면의 주름이 풍경의 주름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풍경으로 눈 뜨기 시작했고, 그 눈으로 시를 쓴다.
등단 20여년 만에 낸 첫 산문집이 '풍경의 비밀'(랜던하우스 펴냄)인 것은 이 때문이다.
유년시절부터 이어온 자신의 삶과 일상에 대한 생각, 그리고 시에 대해서, 또 고교 2년 때 신문에서 본 실크로드에 대한 풍경이 잊혀 지지 않아 그동안 다섯 번이나 찾은 실크로드에 대한 여행기를 실었다.
"앞으로 시집 몇 권이나 더 내겠어요?"라는 그의 말. 제1부 제목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나이'처럼 자꾸 조바심이 나 보인다.
'시의 목표란 자꾸 모호해지고 시의 앞날 또한 설명하기 마뜩찮다.'며 안타까워하고, '천박한 재능으로 말을 쥐어짜내야만 겨우 몇 줄의 시가 몸피를 드러낸다.'며 고백한다. '사물은 보여지거나 만져지거나 냄새를 통해 나와 비슷해진다'는 말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처럼 풍경이 마치 자신의 정체성으로 작용하는 것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각 글에는 사진이 같이 실렸다. 자신이 찍은 사진뿐 아니라 오랜 지기(知己)인 시인 장옥관 씨와 선배 시인 이하석 씨가 찍은 사진을 함께 담았다. 글과 함께 많은 느낌을 던져주는 사진들이다.
지은이는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금호강 인근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1986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해 첫 시집 '얼음시집'을 비롯해 '살레시오네 집', '푸른빛과 싸우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기억들', '진흙 얼굴' 등을 냈다. 현재 동구 반야월에서 '송재학의 미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첫 산문집에는 그가 디뎠고, 앞으로 디뎌야 할 소나무 같은 큰 발자국이 단단하게 느껴진다. 269쪽. 9천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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