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처음 등장했던 LP, 그리고 1990년대 LP를 밀어내고 음반시장의 새로운 주류를 형성했던 CD를 거쳐 이제는 MP3가 대세인 시대. 요즘은 판을 사러 레코드점을 들러야 할 필요도 없고 이를 애지중지 아끼고 닦느라 시간을 보낼 이유도 없이, 컴퓨터로 원하는 곡을 내려받아 듣고 싫증이 나면 간단히 단추 하나를 눌러 지운 뒤 새로운 곡으로 갈아치우면 된다.
하지만 편리한 디지털 시대 속에서도 굳이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마니아들이 있다. 옛 것에 대한 향수에서, 혹은 음악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질감 때문에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LP를 찾아나서는 사람들이다.
▶ 풍성한 음악의 질감 LP
CD수집광이었던 김진섭(45)씨는 약 1년전부터 LP수집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4천여장에 달했던 CD음반을 창고 한쪽 구석으로 밀어내고 다시 사 모은 LP가 벌써 3천여장. 그는 하루가 멀다하고 인터넷 중고 LP장터를 뒤지고, 대구역 뒤편 '보물창고'를 찾아 쓸만한 물건들을 발굴해내는 재미에 푹 빠져산다고 했다.
"아무래도 CD음질은 좀 차갑고 날카로운 맛이 난다고나 할까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런 음악이 불편해지더라고요. 하지만 LP는 그렇지 않습니다. 들을수록 귀에 감겨오는 부드러운 느낌에 황홀함을 느낍니다. 게다가 음악만이 아니라, 특유의 재킷 디자인을 감상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지요."
LP의 매력을 아는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LP는 싱싱한 재료로 갓 차려낸 맛난 식사라면, MP3는 길가다 대충 하나 집어들고 식사를 떼우는 햄버거 정도라고. LP가 소리의 100%를 담고 있다면 CD는 이를 절반으로 압축한 소리, MP3는 CD의 음질을 다시 10분의 1로 압축한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히 음악은 LP로 들어야 제맛이라는 주장이다.
중고 LP가게를 뒤지고 다니면서 '극소수의 향수병이 아닐까?'라는 걱정도 했지만 의외로 LP인구는 상당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한 달 평균 매출이 1~2천만원에 달한다."고 귀뜸했다. 그만큼 찾는 이들이 많다는 의미겠다. 더구나 요즘은 점점 LP를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란다. 디지털 음악에 지친 사람들이 다시 아날로그로 회귀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든 세대나 옛 향수를 더듬으며 듣는 음악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정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LP의 매력에 쉽게 빠져듭니다. 불편함 정도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고 또 오히려 음악의 듣는 맛을 좋게 해 주는 요인이라고 하던데요." 중고 LP전문점 '레코디안'의 김주형 씨의 말이다.
▶ 낡고 너절한 것들의 미학
요즘은 CD도 발매 1년만 넘어서면 희귀음반 대열에 들어선다고 한다. 워낙 수요가 없어 소량만을 발매하다보니 때를 놓치면 그 앨범을 다시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란다.
LP시장은 더욱 척박하다. 신규로 발매되는 LP를 구경하기조차 쉽지 않다. 마니아들의 손에 의해 복원돼 재발매되거나, 한정판 소장용으로 나오는 기념앨범 정도가 전부. 당연히 시중에 유통되는 LP음반의 99.9%는 중고음반들일 수 밖에 없다.
중고 LP의 가격은 몇 천원부터 수백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그렇다고 절대(!) '부르는게 값'이란 식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적정한 가격 기준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를 관장하는 곳은 영국의 '골드마인'(Gold Mine). 앨범의 발표년도와 초반인지 여부, 앨범의 보존상태, 희소성 등을 감안해 매년 중고 LP의 가격을 책정해 발표한다.
비싼 희귀판은 해외 음반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나라 앨범이 해외 마니아들의 손에 희귀음반으로 수집되는 일도 있다.
그 중 200달러 이상에 거래되고 있는 사라장(장영주'바이얼리니스트)의 데뷔앨범이 대표적인 사례. 한국에서만 발매됐던 그녀의 데뷔앨범 LP를 구하기 위해 국내 사이트를 뒤져 해외로 우송을 부탁하는 골수팬들까지 심심찮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에겐 음악적 암흑기가 해외의 음악 마니아들에게는 재미있는 수집거리가 되기도 한다. 70,80년대에는 문광부 심의때문에 원래 앨범에서 금지곡 1~2곡이 제외되고 앨범이 발매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를 재미있게 여긴 해외 음악 마니아들이 '희귀앨범'으로 한국 라이센스 발매판을 수집하는 사례도 있다고.
그럼 가장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앨범은 뭘까? LP마당의 김건형 사장은 "변진섭과 신해철의 앨범일 것"이라고 했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100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던 히트 가수. 그래서 집집마다 몇 장 쯤은 이들의 LP가 중고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지만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란다.
▶ 턴테이블로 추억을 듣는다
LP를 듣는데는 턴테이블이 필수. 1990년대 초만 해도 오디오 세트에 꼭 들어있었던 것이 바로 턴테이블이었지만, 요즘은 이를 구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일단 국내업체 중에서는 턴테이블을 생산하는 업체가 없다. 해외 업체 마저도 소량 생산으로 옛날과 같은 제품이라도 가격이 몇 배나 올라 100만원, 300만원 이상의 고가 제품이 돼 버렸다.
그래서 LP와 마찬가지로 턴테이블 역시 중고 거래가 주를 차지한다. 대구에서 턴테이블을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은 교동시장. 동아오디오, 우진전자, 대구소리사 등 옛 오디오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매장이 있다. 중고품의 가격은 새제품의 절반가격. 30~40만원 정도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쓸만한 중고 턴테이블을 하나 장만할 수 있다.
동아오디오 황정규 사장은 "턴테이블을 찾는 이들은 많지만 중고 물량을 찾아보기 힘들어 요즘은 거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이는 LP를 듣는 인구가 줄어들어서가 아니라 턴테이블의 가격이 워낙 고가로 뛰어오르다보니, 중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내 놓을 생각을 하질 않으면서 생긴 현상이다.
지긋이 참고 기다릴 용의가 있다면 대구역 뒤편 '보물창고'를 뒤져보는 것도 재미나는 일이다. '보물창고' 주인 강도성씨의 개인 오디오 창고와도 같은 곳. 이곳에서 맘에 드는 턴테이블이나 축음기를 구매할 수는 없지만 워낙 이곳을 들르는 오디오마니아들의 수가 많다보니 알음알음을 통해 맘에드는 제품을 구해주기도 한다.
# 대구지역 중고 LP전문점
◇레코드매니아(www.recordmania.co.kr)-중저가 LP가 다양하게 구비돼 있다. 프린스호텔 뒤편 좁은 골목길을 따라 명덕네거리방향으로 2블럭을 가다보면 신토불이 한정식 지하에 있다. 간판이 없이 지하로 내려가는 유리문 입구에 '레코드매니아'라고 작게 써 있어 놓치기 쉽다. 053)654-7175
◇레코디안(www.recordian.com)-희귀 LP를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매장은 파티마 병원 뒷편. 동부도서관가는 골목길로 따라 올라가다 신암공원이 보이는 네거리 모퉁이에 있다. 간판이 없어 매장을 방문하려면 전화로 위치를 물어가며 찾아가야 한다. 053)939-9396
◇LP마당(www.lpmadang.com)-가요 LP를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다. 물론 클래식과 재즈, 팝도 구비돼 있다. 대구 만촌동 메트로팔레스 인근 우방본사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 있다. 053)756-0286
◇음악나라(www.worldrecord.co.kr)-클래식 음반이 많다. 대구 남부정류장에서 경산방향으로 가다보면 대륜고 가기 전 우측편으로 우방금탑아파트 가는 골목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500m쯤 가면 찾을 수 있다. 낮에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아 저녁 7시 이후에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 011-545-9534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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