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잡은 '가온학교' 아이들

입력 2007-01-18 09:57:21

현정(16·여)이는 요즘 다시 학교에 다닌다. 현정이는 소위 문제아였다. 집안 형편이 기울면서 결석과 가출을 밥먹듯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거리를 방황하는 날이 더 많았다. 화가 난 선생님으로부터 '짐승XX!'라는 꾸중을 듣고는 아예 학교에 발걸음을 끊었다. 속은 후련했지만 앞날은 더 불안하기만 했다.

그러나 대구시 중구 남산동 한 3층 건물에 자리잡은 미인가 대안교육 시설인 가온학교에 다니면서부터 현정이는 표정이 밝아지고 말 수도 늘었다. 고입검정고시라는 목표도 생겼고 비슷한 처지의 새 친구들도 생겼다. 현정이는 "시험에 합격해서 꼭 다시 교복을 입고 싶다."며 살큼 웃었다.

"태어날 때부터 문제아는 없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자부심을 찾아주고 다시 예전의 학교로 돌려보내는 것이 이 곳의 목표입니다." 가온학교 최해룡 교사는 아이들이 아웃사이더의 삶을 끝내고 세상의 중심이 되자는 뜻으로 교명도 '가운데'를 의미하는 '가온'으로 지었다고 했다.

가온학교는 지난해 9월 문을 열었다. '대구청소년 대안교육원(원장 민천식 대구교대 교수)' 부설로 설립된 이 곳에는 현재 가출, 유급 등의 이유로 학교에 다니지 않는 만13~18세 남·녀 학생 8명이 공부하고 있다. 출석부에 이름은 있지만 등교를 거부, '학업유예자'로 분류된 아이들이다.

실제 이곳 아이들의 전력은 화려(?)하다. 초교 때부터 담배를 피기 시작한 아이부터 상습적인 오토바이 절도로 경찰서를 제 집 드나들듯 한 학생도 있다. 이 아이들은 영구임대 아파트나 단칸방에 살면서 어릴 때부터 가난에 쪼들리다 나쁜 길로 들어섰다.

여동생(16)과 함께 가온학교에 다니는 재훈(18)이는 "초교 1년, 중학교 2년을 '꿇었고', 이후 3년 동안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고 했다. 한 남학생은 "학교로부터 '수업시간중에 잠을 자도 좋으니 등교만 하면 졸업시켜주겠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난 아버지가 수소문끝에 이 곳에 입학시켰다."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인성·생활지도 교육. 방학이 되면서 주 5일에서 주 3일로 수업이 줄었지만 '1교시'는 늘 청소와 명상으로 시작한다. 자원봉사 교대생들과 영어, 수학, 국어 시간을 끝내면 도시락 대신 직접 점심을 차려 먹는다. 오후에는 텃밭을 찾아가 일손을 돕기도 하고 장애인 시설에 봉사도 간다. 매주 한 번은 '부족회의'라는 이름으로 아이들 스스로 한 주를 반성하는 시간도 갖는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애견과의 산책이다. 이 또한 방과뒤 일탈을 막기 위한 조치다. 매일 오후 8~10시까지 개를 데리고 공원을 돈다. 그중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개는 '가온'이라는 이름의 시츄견. 버려진 개를 주워 학교 이름을 붙였다.

등교 5개월째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유혹에 약하다. 생활지도를 맡은 김순화 씨는 "지난 달에는 채팅으로 만난 남학생과 놀러간 학생을 데리러 밤늦게 차를 타고 간 적도 있다."며 "시외버스정류장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이를 잡아 엄마같은 심정으로 무섭게 꾸짖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꼬박꼬박 출석도 하고 검정고시라는 목표도 생기면서 마음을 잡아가고 있다며 대견해했다.

가온학교 경우 수업료를 낼 수 있는 학생이 많지 않아 월 70만~80만 원의 빠듯한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편 가온학교는 신입생과 아이들을 가르쳐줄 교사를 모집하고 있다. 053)246-7179.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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