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 앓는 26세 김상봉씨

입력 2007-01-17 08:52:40

"살길 보여도 수술비 없으니…아비 잘못 만난 탓…"

상봉이 보거라.

아들아, 능력 없고 못난 아비 만나 고생이 많지. 지난 여섯 달 동안 참 많이 아프고 속상했제. 묵묵히 치료를 견뎌내는 너를 보니 한편으로 네가 자랑스러워지더구나. 요즘 더 많이 힘들텐데···. 빚 때문에 골수이식을 못해 준 아비를 용서하려무나. 미안한 마음 뿐이구나. 고등학교 학비도 주유소에서 낮밤으로 일하며 벌게 했는데 이젠 치료비 하나 대지 못하는 몹쓸 아비가 되어버렸구나.

요즘 병원에 갈 때마다 잘 걷지 못하는 너를 보면 자꾸만 큰 일이 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병원에서는 더 나빠지지 않았다는데도 왜 내 눈엔 네가 한순간 솜털같이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지···.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버텨다오. 널 차마 이렇게 허망하게 보낼 수가 없다. 어떻게 해서든 수술비 5천만 원을 마련해보겠다. 예전처럼 공사판 일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 놈의 몸뚱아리가 이리도 말을 듣지 않는구나. 널 볼 염치가 없단다.

치매환자들을 돌보는 네 엄마도 요즘 많이 힘들어하는구나. 병원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벌어오는 80만 원이라는 돈을 볼 때마다 나는 죄인이 된단다. 처자식 앞에서 든든한 남편, 아비 모습 보여주지도 못하고. 매일 아침 수척해져가는 네 얼굴을 볼 때마다 두렵단다. 마지막으로 널 위해 뭔가를 해 줄 수 있는 기회를 다오. 사랑한다 상봉아.

아버지께.

윗니가 하나도 없는 우리 아버지, 틀니 해넣으려고 모아놓은 돈을 제 치료비로 다 썼다는 이야기를 얼마전 들었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참 마음 아팠는데···. 대신 제가 나으면 꼭 틀니 해드릴게요. 요즘 많이 답답하시죠. 매주 병원 갈 때마다 지친 아버지 얼굴을 보면 면목이 없어요. 26세나 된 자식이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고 이러고 있으니 저도 염치가 없어요.

아버지 조금만 참아주세요. 저 안죽어요. 누가 죽는대요. 아버지보다 먼저 가진 않을테니 걱정 말고 조금만 더 지켜봐주세요. 병은 다 환자의 의지에 달렸대요. 제가 암과 싸울 준비가 돼 있는데 하늘도 절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아버지 어깨에 놓인 그 무거운 짐을 제가 맡을게요. 그러니 제 치료비 걱정 말고 아버지도 병원에 다녀오세요. 치료를 제때 안받으니까 이빨이 모두 다 상하잖아요. 당뇨보다 더 무서운게 합병증이라고 합니다. 허리도 많이 굽었던데···.

제가 빨리 일어서서 아버지가 진 빚이랑 제 치료비 모두 갚을겁니다. 학교를 장학생으로 다닌 것 잘 알잖아요. 구미 전자공장에서도 대리로 인정받았어요. 다 잘될거예요. 우리 조금만 더 힘내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16일 오전 10시 의성군 안계면의 한 허름한 시골집에서 만난 김상봉(26) 씨는 항암제에 취해 힘겹게 누워있었다. 김 씨는 지난해 6월 혈액암의 일종인 '골수이형성증후군' 판정을 받았다. 김 씨가 사는 길은 골수이식뿐이라고 한다. 아버지 김화덕(54) 씨는 7년 전 친구에게 보증을 잘못 서 빚 6천만 원을 졌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그는 요즘 이빨이 모두 빠지고 관절에 이상이 생겨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다. "수술비를 마련키 위해 집을 내 놨습니다. 시골집이라 그런지 잘 안 빠지네요." 김 씨는 아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골수를 미국에서 찾았지만 수술비 5천만 원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눈 앞에서 아들이 날아갈 것만 같습니다. 골수가 있는데도, 아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아비를 잘못 만난 우리 아들 어찌하면 좋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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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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