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순 부산에서 토플시험을 치는 고교 2학년 이모(17·대구 수성구) 군은 "시험을 칠 수 있게 된 것만도 정말 행운"이라고 했다. 내년도 대입 특차전형을 위해 토플을 공부 중이라는 이 군은 "인터넷 접수처에서는 시험날짜가 뜨기 무섭게 응시정원이 마감됐다."며 "인터넷을 뒤진 끝에 겨우 부산의 수험표를 받았는데, 같은 학원 토플 수험생 중에는 이런 불편을 피해 아예 타국에 가 시험을 치는 학생도 있더라."고 말했다.
◆영어 시험치러 외국 간다
대구 한 토플전문학원 원장은 "토플성적 제출시기가 임박한 응시자들이 국내에서 응시날짜를 잡지 못해 중국, 일본, 필리핀에 가서 시험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또 "대구에서도 시험장소를 잡지 못해 부산이나 서울, 대전 등지로 시험을 치러 가는 응시생들이 많지만 해외 원정 수험생에 비하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직장인 최모(34·대구) 씨는 최근 필리핀으로 '토익시험 원정'을 했다. 승진을 위해 토익 점수가 급히 필요했지만 국내에서 시험 치고 결과까지 받으려면 최소한 두 달은 걸리기 때문. 이에 시험을 치른 다음날 성적표를 받을 수 있는 필리핀에서의 시험을 선택했다.
미국대학원 입학자격 영어시험(GRE) 응시자들은 주로 일본 오사카로 몰리고 있다. '일본 GRE 패키지'를 판매하는 한 여행사 관계자는 "월말을 이용해 3박4일 일정으로 방문하면 월초까지 2차례 시험 응시가 가능하다."며 "시험장 인근에 마련된 숙소는 한국인 응시생들로 넘쳐난다."고 말했다.
◆왜 가나?…'시험장이 없어서' '불편해서'
현재 국내에서 IBT시험을 칠수 있는 장소는 14곳으로 회당 응시가능 인원이 총 90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국내 한 연구소에 따르면 2004~2005년 전 세계의 토플 응시 인원은 55만여 명. 이중 한국인이 10만 2천여 명(18.5%)으로 가장 많았다. 한 해 평균 5만여 명의 한국인이 토플을 친 셈이다. 새 시험에 적응하느라 응시인원이 다소 줄어든 점을 감안하더라도 900명이라는 정원은 이런 수요에 비해 턱없이 적다.
이에 대해 한미교육위원단 측은 "IBT 시험장 계약을 맺었던 숙명여대, 한국외대가 잇따라 시험 장소 제공을 중단해 14곳으로 줄었다."며 "현재 토플시험 주관사인 ETS가 서울소재 대학들을 중심으로 시험 계약을 지속적으로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ETS는 CBT 시험 당시 한미교육위원단이 갖고있어 시험주관 대행권을 회수해 간 상태다.
GRE 시험장소도 대구에서는 계명대 한 곳뿐인 등 전국적으로 한정돼 있다. 국내에서 연 2회 치러지는 GRE 어휘 시험의 경우 일본에서는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4곳에서 있다.
기껏 시험자격을 얻은 뒤에도 불편은 이어진다. IBT는 지난해 9월 한국에 도입된 이후 인터넷 서버가 다운돼 시험이 지연되거나 무더기로 취소되는 등 말썽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험일정이 제때 공지되지 않거나 접수처마다 전화가 폭주해 응시원서를 내는 일조차 쉽지 않다. 한 중학생 학부모는 "170달러(15만여 원)나 되는 응시료를 내고도 시험 접수를 위해 전화기에 불이 나도록 버튼을 눌러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개선여지는 있나
토플 주관사인 미 ETS의 '배짱 장사'에도 불만이 높다. ETS는 시험의 공정성을 이유로 주로 대학과 시험계약을 체결하고 있지만, 문제지 제공·채점 이외의 모든 부담을 계약자 측에 떠넘기고 있다. 때문에 IBT 기술지원을 담당하는 미국 프로메트릭사는 오는 3월까지 전국 12곳(2천여 석)에 시험장을 더 설치하겠다고 나섰지만 이들의 공언대로 선뜻 나설 대학이 많을지는 불투명한 형편이다.
지난해 초 ETS와 토플시험 계약을 추진했던 계명대 관계자는 "인터넷 서버 다운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과 고가의 인터넷 장비설치를 대학 측에 떠넘기는 등 불합리한 계약조건 때문에 수 개월 고민끝에 계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반면 대구가톨릭대는 ETS와 시험 계약을 추진 중이다. 대구가톨릭대 관계자는 "컴퓨터 설비가 완료되는 대로 이르면 한 두달 이내에 120명 응시규모의 토플시험장을 보유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역대학 한 영어과 교수는 "우리처럼 영어시험 수요가 큰 나라에서 거액의 로열티를 지급하고도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결국 문화 종속의 한 단면"이라며 "최소한 비행기 타고 나가서 시험치는 일만큼은 정부가 나서서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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