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닥터] 야누스적인 병 '조울병

입력 2007-01-11 07:58:26

30대 남성이 가족 손에 이끌려 정신과를 찾았다. 몇 년 전 우울증을 앓다가 회복된 적이 있는데 몇 주 전 부터는 지속적으로 기분이 들뜬 듯 보이고 목이 쉴 정도로 말이 지나치게 많아졌다고 한다. 그는 잠을 자지 않고도 피곤하지 않다며 밤새 컴퓨터를 하고 집안을 왔다 갔다 한다는 것. 야심 있는 계획에 가득 차서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며 돈을 주저 없이 썼단다. 그의 행동을 말리는 가족에게는 짜증스럽게 반응하고, 때로는 폭언을 하며 물건을 부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양극성장애 또는 조울병(躁鬱病)의 전형적인 경우이다. 흥분상태를 나타내는 조(躁) 상태와 비애, 불안의 감정의 울(鬱) 상태가 계속해서 교대로 나타나는 정신질환이다. 대개 이러한 기분 상태는 며칠에서 몇 개월 동안 지속된다.

◆조증상태

일반적으로 비정상적으로 고조된 기분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고 다음의 증상 가운데 3가지 이상이 있을 때 조증삽화(삽화 : 현저한 정신증상이 다시 나타나는 것)라고 진단된다. ▷팽창된 자존심 ▷수면욕구의 감소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고 말을 계속하고 싶은 욕구 ▷사고의 비약 또 는 사고가 분주하다는 주관적 경험 ▷주의 산만 ▷목표 지향적 활동증가(업무나 성적 욕구, 정신운동성 흥분) ▷고통스런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이 높은 쾌락에 몰두(무절제한 물건구입, 어리석은 사업추진).

조증 상태에 있는 환자들은 의기양양한 흥분상태로 바쁘게 다니며 피로감을 잘 느끼지도 못한다. 생각이 많고 사고 과정이 빨라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면서 쉽게 주제에서 벗어한다. 많은 양의 글을 쓰기도 한다. 성에 대해 과다하게 몰두하기도 해 평소 정숙했던 여성 환자가 화장을 짙게 하고 성적으로 활발해지기도 한다. 재산과 권력에 관한 과대망상이나 종교망상, 환각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우울상태

우울삽화는 하루 종일 우울감을 느끼는 상태가 2주일 이상 지속되면서 다음의 증상 가운데 5가지 이상이 있을 때이다. ▷하루의 대부분 동안 우울한 기분 ▷거의 모든 활동에서 흥미가 크게 감소 ▷심한 체중 감소 또는 체중 증가 ▷지속적인 불면 또는 과수면 ▷정신운동성 초조나 지체 ▷피로감이나 기력 상실 ▷무가치감이나 과도한 죄책감 ▷집중력 또는 사고능력 감퇴 ▷반복적인 죽음에 대한 생각.

우울 삽화를 겪고 있는 환자들은 무기력하고 점차 행동이 느려지고 억제돼 아무런 느낌이 없다고 한다. 또 지속적인 불안, 걱정, 긴장, 초조감, 좌불안석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무력감, 고립감, 분노와 공격의 감정, 죄책감, 자기징벌의 욕구 또는 망상 등의 이유로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해하는 경우가 있다. 우울 삽화는 조증 삽화보다 자주 재발하는 경향이 있다. 또 오랜 기간 지속되며 사회 기능에 심각한 장해를 유발할뿐더러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어 조증 상태 이상으로 위험한 시기이다. 때로는 경한 조증 삽화나 조증과 우울상태가 공존하는 혼합 삽화가 나타날 수도 있다.

◆치료

조울병은 유전학적 요인, 신경 생물학적 요인, 심리 사회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이 병은 재발이 잘 된다. 환자의 60%가 4년 이내에 재발한다는 통계가 있다. 처음엔 심한 사회적,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은 뒤에 주로 발병한다. 하지만 점차 특별한 이유 없이 다시 나타나고, 호전된 상태로 지내는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빨리 재발한다.

따라서 조울병은 급성기 치료뿐만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한 유지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급성기 치료에서는 약물 치료가 필수적이고, 필요한 경우 전기 경련 치료와 같은 생물학적 치료를 받기도 한다. 환자를 불필요한 자극으로부터 보호하고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입원을 권하기도 한다. 조증 삽화의 약물치료에는 리튬 외에도, 발프로에이트, 카바마제핀 등의 기분 안정제를 주로 사용된다. 조증 삽화의 증상이 심하거나 빠른 호전을 위해 쿠에티아핀, 리스페리돈, 자이프렉사, 아빌리파이, 지프라시돈 등의 비정형 항정신병 약물을 쓰는 경우도 있다. 우울 삽화 시에는 라믹탈이라는 약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항우울제의 사용은 또 다른 조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대부분 환자들은 증상이 나아지면 약물 복용을 꺼린다. 그러나 조울병은 재발을 반복하는 만성적인 질환이기 때문에 꾸준한 치료를 해야 한다.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도움말·구본훈 영남대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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