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혁(47) 태성고무화학 회장은 이른바 2세 경영인이다. 사료업계 대부로 통하는 고(故) 이상윤 전 서울사료(주) 회장이 그의 부친이다.
이 전 회장은 지난 1950년대 대구 북구 산격동에서 '신기농장'이라는 작은 농장으로 시작해 사료업계 대표 기업인으로 우뚝 선 입지전적 인물이다. 지난 1994년 작고하기 전까지 서울사료 회장은 물론 한국양계협회장을 수차례 지냈다.
그런데 2세인 이 회장 직함은 부친과는 달랐다. 그가 대표인 태성고무화학은 자동차 부품업체다. 대구출신 2세 경영인들이 유독 부침(浮沈)이 심해서 그런지 그의 현주소가 궁금했다. 그때 양재동 그의 사무실에 있는 액자의 글귀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겉치레를 삼가고 내실을 추구한다는 '거화취실(去華就實)'.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좌우명이라고 한다.
"지난 1994년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아버님을 욕 보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이 큽니다. 2세가 경영을 맡아 기업을 망쳤다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화려한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알차고 실속있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뜻에서 경영방침으로 정했습니다."
그는 선친으로부터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1980년대 초 대학 재학시절에는 경기도 성남의 도계장(屠鷄場·닭은 도살하는 공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대학졸업 후인 1985년부터는 1, 2, 3농장이 있는 대구로 직접 내려가 닭을 키우고 유통시키는 일을 했다. 부잣집 장남치고 여간 험하게 경영수업을 쌓은 게 아니다. 그는 "아버님은 유독 저에게 혹독할 정도로 경영수업을 시켰습니다. 결혼 전까지 몸무게가 54kg밖에 나가지 않았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실제로 그는 경영수업 도중 죽을 고비를 넘긴 일도 있었다. 전국의 농장에서 닭을 구입, 도계장까지 운송하는 일을 할 때다. 보통 오전 5, 6시까지 계속되는 강행군이 다반사였는데 어느날 새벽, 닭장차를 몰고 오다 철도 건널목에서 차량이 전복된 것이다.
"당시 하루가 다르게 닭값이 치솟아 농장주들이 출하를 꺼리던 때 였습니다. 실랑이 끝에 새벽녘에야 닭을 싣고 오는데 천안쯤에서 닭차가 쓰러진 겁니다. 다행히 죽을 고비는 넘겼지만 도계장 일은 그만치 험했습니다."
부친이 타개한 1994년부터 그는 경영일선에 나섰다. 혹독한 경영수업이 밑바탕이 된 탓인지 그가 경영을 맡은 후 서울사료의 사업규모는 갈수록 커졌다. 업계 8, 9위에 머물던 서울사료가 업계 3위까지 발돋움했다. 제일제당, 대한제당, 삼양사, 두산 등 대기업이 대거 진출해 있는 사료업계에서 중소기업 규모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1997년 말 IMF 사태가 터지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수입곡물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사업이 위기를 맞은데다 구제역, 조류독감 등 가축질병이 돌기 시작하면서 은행대출도 막혀버린 것이다.
그는 "워낙 사업이 어려워서 당장 떨쳐버리고 싶었습니다. 기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은행까지 기업을 힘들게 하는 상황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2001년 사업다각화를 위해 인수한 자동차 부품업체인 태성고무화학을 주력 사업체로 바꾸고 서울사료는 2004년 매각했다. 사료업으로 잔뼈가 굵은 경영인이 자동차 부품업으로 말을 갈아탄 것이다.
그는 올해를 제 2의 도약의 계기로 만들겠다고 했다. 조만간 자동차 후륜구동과 관련된 신제품이 완성돼 양산체제를 갖출 예정이다. 그는 "3년여에 걸쳐 제품을 개발했는데 올해부터는 대량생산을 통해 GM 등 미국시장도 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동차 수입 판매 분야에도 진출, 수퍼카 가운데 아직 국내에 상륙하지 않은 람보르기니, 로터스 등 유럽의 레이싱 카를 들여와 본격 시판할 계획도 갖고 있다. 그는"아버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내실있는 기업을 만들 생각입니다. 나중에는 대구 농장에 내려가 동물을 키우며 살 겁니다."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이상곤기자 lees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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