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를 맞아 많은 모임에 참가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대개 동창회를 시작으로 사회 각 분야의 모임이 줄을 잇는데, 으레 즐거운 마음과 형식적인 마음이 엇갈리는 가운데 모임에 참가하게 마련이다.
우리의 모임은 참으로 거나하다. 각종 술과 기름진 안주가 한 상 잘 차려져 있고 인원이 좀 많은 모임에 갈라치면 뷔페가 일반적이다. 그저 간만에 만나는 지인들과 가볍게 담소를 나누고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는다는 기분으로 참가했다가는 차려진 음식에 주눅이 들고 한 순배 돌기 시작한 술로 인해 나도 모르게 분위기에 휩쓸려 버린다.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화려하게 차려진 잔치지만 사실 실속은 없게 마련이어서, 시간이 지나면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거나 기억에 남지도 않아, 끝내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공연예술계에는 '모두를 위한 예술(Arts for Everyone)' 즉,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예술에 대한 환상이 있다. 예술이 시간과 공간, 민족을 초월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느 위대한 예술가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란 불가능한 것이다. 오히려 이런 환상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우수한 예술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지역의 공연예술계는 양적인 팽창에 비해 질적인 성과를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축제 등은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지만, 과연 모든 사람들이 만족했을까라는 평가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실상 21세기 공연예술의 길은 '시장세분화(Market Segmentation)'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장세분화를 통한 표적관객(Target Audience)의 선정과 이를 활용한 데이터베이스 마케팅의 도입이 공연예술의 성과를 높일 수 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우리는 작은 것에 인색한 경향이 있다. 봄이 되고 각 대학에서 동아리 회원을 모집하는 것을 보아도 너무도 거창한 모임이 허다하다. 나는 1950년대 재즈를 연구하는 모임같이 세분화되고 전문적인 모임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너무도 거창한 제목의 모임들로 동아리가 아니라 대단한 학술단체로 보일 때가 많다. 부디 새해는 우리 사회와 우리 공연예술계가 보다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환상에서 빨리 벗어나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해본다.
백진우(대구예술대 교수·애플재즈오케스트라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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