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진이 만난 사람들] 동화사 허운 주지

입력 2007-01-04 11:37:52

[조두진이 만난 사람들] 동화사 허운 주지

이른바 '사진발'이라는 게 있는데, 동화사 허운 주지스님은 '사진발'이 안 받는 분 같다. 스님 이야기에 '사진발' 운운하자니 민망하지만, 허운 스님은 인물 좋고, 풍채 좋고, 특히 목소리가 좋은 분이었다. 그런데 사진 속 얼굴은 '딴 사람' 같아 보인다.

스님의 얼굴빛은 맑았으며, 그 목소리로 염불 한번 꼭 듣고 싶은 분이었다. 하도 목소리가 좋아 동자승 시절 늘 선창을 맡았고, 나이든 보살들이 '잘 때 업어 갔으면 좋겠다.'을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물론 사진에 드러나는 외곬인데다 강직한 낯빛도 있다.

허운 스님(虛韻·48)은 2006년 6월 진산식(晉山式·스님이 한 절의 주지로 취임하는 의식)을 갖고,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주지가 됐다. 동화사는 신라 소지왕 15년(493년) 극달화상이 창건하고, 흥덕왕 7년(832년) 심지대사가 중창한 고찰로, 이전의 주지스님은 대부분 60대였다. 120개 가까운 말사를 거느린 데다 한국 불교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각별한 이 절에 40대 주지가 탄생한 것은 이례적이다.

40대라는 젊은 나이를 곁들이지 않더라도 허운스님은 개혁적인 사람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종교간 벽 허물기, 청소년 포교, 불교의 사회 참여 등에 앞장 서 온 사실은 많은 불자들이 익히 아는 사실이다. 특히 경산성당의 정홍규 신부와 함께 종교간 벽 허물기 운동을 펼치는 분이기도 하다. 말씀에도 벽이 없었다. 스님들이 좀처럼 말씀을 꺼리는 사가(私家) 이야기, 출가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지난해 허물을 참회하고 희망찬 새해를 열고 싶은 마음으로 동화사 허운 주지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새해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했다.

◇ "행복은 내일 맞이할 손님이 아니다"

40대의 허운 스님께는 젊고 개혁적이라는 말이 늘 따라 다닌다. 평소 종교간 벽 허물기, 청소년 포교, 불교의 사회참여 등을 중요하게 여겨왔기 때문이다. 스님은 "젊음이 곧 개혁은 아닐 것입니다. 주변에서 저를 두고 개혁적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 아마도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생을 떠나 부처가 없듯, 이웃과 사회를 외면한 깨달음 역시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 어른들을 자주 찾아 뵙고 좋은 말씀을 많이 듣고 실천해 나갈 것입니다."

종교간 벽 허물기에 대해서도 스님은 신념을 갖고 있었다.

"기독교의 사랑, 불교의 자비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경산성당 정홍규 신부와 연합행사를 통해 천주교리와 신부님의 생각을 경청한 뒤 종교간 벽 허물기 행사가 우리 사회의 분열과 대립을 없애는 빛이요, 소금이라 생각했습니다. 세상의 소외되고 고통받고 목마른 중생들에게 물 한 모금 주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자 포교의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시·도민들에게 지금은 어려운 시기입니다. 경제적으로 막막하실 것이고, 정치적으로는 상실감도 갖고 계실 줄 압니다. 그러나 어려운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위로 향한 눈을 아래로 돌리고, 여유를 가지고 새 해를 시작하시면 좋겠습니다. 깨달음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깨달음일 것입니다. 오늘 행복해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행복은 약속처럼 내일로 미룰 수 없습니다. 내일로 미룬다고 은행이자처럼 늘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행복한 사람이 내일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소유로부터 조금 자유로운 마음으로,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고 나누는 마음을 가진다면 행복하실 것입니다."

◇ 중학생 때 세속 떠나 불문 귀의

승가는 혼자이면서도 여럿이 함께 사는 곳이다. 즉 '보살'을 삶을 사는 곳이다. 그래서 스님들에게 출가 전의 삶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불문율처럼 돼 있다. 허운 주지 스님도 그랬다. 출가 전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전에 수행자의 태도에 대해 먼저 말씀하셨다. '수행자는 외로워야 한다. 수행자가 할 말 다 하고, 하고 싶은 일 다하고, 볼 일 다 보고…. 그래서는 안 된다. 승속의 경계를 너무 강조할 필요는 없지만, 경계를 흔들어서도 안 된다. 경계를 흔들면 세속화 될 수 있다.'

"사가 조부님이 서당 훈장을 하셨어요. 4,5세 때부터 한문을 배웠는데, 그런 공부는 좋은 데 학교생활에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마음 속엔 늘 그리움 같은 게 있었고요. 그래서 밖으로 돌아다녔어요. 학교에 가도 교실에 있지 않고 혼자 운동장을 배회하거나 울타리 밖을 바라보기 일쑤였어요. 용돈을 받으면 그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집을 떠나 살았어요. 하도 밖으로 나가니까, 나중에는 용돈을 안 주셨지요. 집, 그러니까 한 곳에 머물게 하려는 부모님의 생각이었는데, 그래도 마음은 늘 어디론가 떠나고 있었어요."

허운 스님은 중학교 시절 여름방학을 시작하던 날, 집으로 가지 않고 가방을 든 채 기차를 탔다. 사가가 있던 경기도 안성을 떠나 동대구역에 내렸다. 가능한 먼 절이라고 찾아낸 곳이 파계사였다. 기차가 도착했을 때는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당시는 통금이 있던 시절이었다. 통금확인 도장을 받고, 파계사 가는 첫 버스를 탈 생각으로 역사 안에서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옷도 신발도, 가방도 비상금도 사라지고 없었다.

역사 주변을 뒤져 발에 맞지도 않은 신발을 주워 신고 걸어서 파계사로 향했다. 신발이 맞지 않아 30분쯤 걷고 나니 물집이 맺혔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서 절을 찾아갔다. 아직 어린 중학생이 굶주리고 지친 몸으로 낯설고 먼 길을 맨발로 걸었던 것이다. 파계사에 도착해 부처님 앞에 삼배하고 일어서는데 잃어버린 줄 알았던 돈이 옷에서 떨어졌다. 아무리 찾아도 없던 돈이었다. 그 돈이면 버스 요금은 물론이고 요기를 할만한 돈이었다.

'속았다.'

무엇에 속았다고 생각한 것인지 모호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돈을 마당으로 던졌다. 그때 마당 앞을 지나던 노스님이 그를 불렀다. 그리고 '어째서 돈을 함부로 버리느냐?'고 물었다. 그날 중학생은 불문에 귀의했다.

◇ '문학청년'의 향기 배인 스님

스님을 만나기 전에 '스님은 학승이며, 세속으로 보면 문학청년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특별히 문학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스님이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란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목소리는 낮고, 말투는 구어체가 아니라 문어체였다. 사람의 말투는 그가 어떤 유형의 사람과 대화를 나누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말하자면 허운 주지 스님은 사람들과 대화보다 책과 대화를 많이 나눈 사람 같았다.

출가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는 시인 송수권님의 '산문에 기대어'를 읊조리며 골 깊은 음색과 설움 겨운 마음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런 마음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젊은 시절 많은 사람이 그렇듯 문학에 관심이 있었지요. 게다가 부처님 경전이 문학적 구성을 갖춘 것이니까요. 부처님 경전은 인류의 방대한 문학작품을 집대성한 것과 같은 가치가 있습니다."

허운 스님은 경전은 부처님 말씀의 숲이라고 했다. 경전 속 신심을 통해 누구나 부처님의 원음을 재생해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악한 사람도 경전의 숲 속에서는 착해지는 것도 부처님의 말씀을 직접 듣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과 정성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허운 스님은 불가에 귀의한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나 수행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행의 시작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수행이란, 누군가에게 피해나 상처를 주기 쉬운 말과 행동을 고쳐 나가는 것, 그래서 정대하고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힘(권력이든 돈이든, 물리적인 힘이든)을 가진 사람이 그 힘을 바르게 쓰기는 어렵습니다. 유혹이 있고, 쓸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바르게 쓰려고 노력하는 자세, 자신을 정대한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스님은 '사람은 살아서 100년을 넘기기 어렵지만, 죽어서 1000년을 산다.'고 했다. 사람의 몸은 100년을 넘기기 어렵지만,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했던 행동과 말은 1000년을 간다는 것이다. 말과 행동이 한 인간을 구할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 얼마나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인가.

◇ "보시를 무섭게 생각합니다"

허운 스님은 동화사 주지 진산식 때 축하화환을 사절하고, 화환 값을 모아 장학금과 외국인 노동자 돕기에 썼다. 불교행사라면 으레 '거창하고 화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뜻밖이었다.

"보시를 무섭게 생각합니다. 보시를 받을 때는 삼륜이 청정(三輪淸淨)해야 합니다. 삼륜(三輪)이란 베푸는 사람(施者)과 받는 사람(受者), 보시한 물건(施物)을 말합니다. 이 세 가지가 깨끗할 때 참된 베풂이 됩니다. 이런 뜻을 살려 화환 값을 모아 장학금과 외국인 노동자를 돕는 데 썼습니다. 검소는 우리 종단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생활양식입니다. 옛날 스님들은 무쇠 솥 하나의 더운물로 30여명이 목욕을 다 했습니다. 흘러가는 개울물이라도 마구 쓰거나 함부로 더럽히지 않았던 것이지요."

스님은 그러면서 전해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옛날에 한 구도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선지식인을 찾아갔는데, 계곡에 상추 한 잎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 선지식인이 얼마나 높은 경지의 도를 깨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낭비한다면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가 받은 몸(正報)과 환경(依報)은 아끼고 잘 보존해야 합니다. 산을 뚫어 길을 낼 때도 단순히 속도와 효율, 경제성만 따져서는 안 됩니다. 길은 속도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길에서 우리는 만남을 가집니다. 사람을 만나고 집을 만나고, 마을을 만납니다. 속도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속도가 빨라진다고 생활이 나아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속도는 속도를 요구하고 일은 일을 낳습니다. 우리가 속도와 효율, 경제논리에 너무 중독돼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환경은 소중한 것입니다. 이 소중한 정보와 의보를 속도와 일로 몰아붙여서는 안됩니다. 때때로 망연자실한 눈으로, 긴장을 푼 눈으로 바다와 산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스님은 우리가 '길' 위에서 묻고 답하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요즘은 오직 속도를 올리느라 묻고 답할 시간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우리의 속도가 정상적인지, 가는 길이 바른 길인지 자주 묻고 답해야 한다고 했다.

◇ 허운 스님은…

성우(불교TV방송국 회장·파계사 회주) 스님을 은사로 파계사에서 동진(童眞) 출가한 학승. 화엄학림을 수료했고, 범어사 승가대학, 통도사 승가대학 강사를 지냈다. 2002년부터 은적사 주지로 있으면서 2005년 조계종 총무원 재무부장으로 중앙 종단의 살림을 맡기도 했다. 2006년 6월 동화사 주지에 취임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작성일: 2007년 01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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