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10년] 당시 퇴직자들의 '말 말 말'

입력 2007-01-02 07:23:35

퇴직자들이 IMF 당시 직장을 잃고 느꼈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들의 말을 통해 당시 상황을 되돌아봤다.

그때 가족들은 나의 눈을 마주 치려하지 않았다. 서로 눈물만 글썽일 것이 분명하니까.

퇴직후 한동안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해 근무복을 입은채 우리끼리 얻은 사무실에 출근했다. 그때 우리 퇴직금을 노리고 전국의 사기꾼들이 포항에 다 몰려들었다.

직장을 잃었을 때 아이들이 나에게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들도 IMF위기를 절감한다고 생각했는데 공부하는 모습이 몇 달 가지 않더라.

서울 건설사 마크가 찍힌 아파트를 보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어쩌다 대구 건설업체들이 이런 꼴이 되었는지?

가족들이 자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칡흑같은 어둠이 깔린 동네 놀이터에 나와 한숨과 담배 연기속에 새벽을 맞곤 했다.

IMF때 모든게 힘들었지만 동료들끼리 누가 잘려 나갈지 눈치보는 것 만큼 힘든게 없었다.

2년간 폐인 생활을 했다. 하루 하루 술만 마셨다. 현실을 받아 들일수 없어 취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회사에서 나올때 37살이었고 젊다고 생각했는데 사회에서는 중늙은이 취급을 하더라. 1년간 수십군데 이력서를 냈지만 나이가 많다고 퇴짜를 맞았다.

퇴직전 8년을 근무하는 동안 동료들의 부음소식을 거의 듣지 못했는데 IMF이후 동료들을 많이 잃었다. 암, 돌연사, 심장마비 같은 스트레스성 질환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회사들은 대부분 고기를 잡아다 주었지,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지않았다. 이력서 쓰는 것 외에는 할줄 아는게 없었다.

IMF 이전에는 양주를 가끔 마시곤 했는데, 지금은 막걸리 한사발도 어렵다.

IMF가 신앙을 갖게 했다. 너무 힘들어 기댈 곳은 신 밖에 없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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