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강경자세 퇴조…대부 포용정책 나설 듯
지난해 북한 핵실험과 중국의 급부상, 미묘해진 한·미 동맹 등 한반도의 안보환경이 요동치고 있다. 그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 간 역학관계의 변화에 대한 해석도 큰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의 생존을 결정할 수도 있는 이들 강대국들 간의 역학관계가 어떤 의미를 가지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가야 할지는 매우 절실한 문제다. 이들 문제에 대한 해석과 우리의 대응 자세를 모색하는 차원에서 보수학자로 분류되는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김태효(金泰孝·40) 교수와 진보학자로 분류되는 세종연구소 홍현익(洪鉉翼·48) 안보연구실 수석연구위원의 의견을 들어봤다.
-미국의 대(對) 한반도 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 전망은.
◆김태효=미국은 글로벌 사회의 제 1인자 국가로서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사조를 지키며 미국적 가치를 확장하는데는 변화가 없다. 대 한반도 정책 역시 이 틀 안에서 움직인다. 단, 지난해 상·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됨에 따라 강경 일변도 정책에서 대화와 타협 중심의 다소 유연한 자세로 국제관계를 이끌어 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어떤 입장을 가지는냐에 따라 미국은 큰 틀의 기조 하에 냉정하게 판단하고 실리를 취할 것으로 보여 더 이상 맹목적 한·미 우호동맹은 기대하기 힘들다. 특히 미국은 세계의 화약고이자 테러의 중심지인 중동 문제를 1순위로 두기 때문에 대 한반도 정책은 2순위로 밀려있는 게 사실이다. 대 북한 정책은 중국과의 갈등 관계까지 고려해 가며 자국의 실익에 부합하는 쪽으로 이끌 것으로 보인다.
◆홍현익=미국은 북한 핵실험으로 악화된 한반도 안보 상황에 유의하며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강화를 위해 한·미 동맹 조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만약 악화된 국내 여론에 밀려 이라크에서 대대적인 철수가 행해진다면 민주당의 영향 하에 북한과의 적극적인 대화가 시도될 수도 있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이 미국의 사활적인 국익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실제로는 북한 핵문제를 경시해 왔던 이중적 입장에서 탈피, 적극적인 대북 포용정책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안정 회복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은 동북아 정책의 틀 속에서 일본의 우경 군사화를 지원하고 중국에 대한 봉쇄·포용 정책을 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부시 행정부가 이끄는 공화당이 다음 대선에서 또 승리할지 여부도 대 한반도 정책 기조 변화에 큰 변수가 될 것이다.
-지난 해 6자회담의 성과가 별로 없었다. 6자회담을 통한 북·미 관계 및 합의도출 전망은.
◆김=현 상황이 그렇듯 부정적인 입장일 수 밖에 없다. 예상대로 6자 회담 역시 각 국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별다른 성과없이 끝났다. 북한의 벼랑 끝 외교 전술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김정일 체제 하에서 핵포기란 없다. 국제사회에서 핵보유 국가라는 입지를 강화하며 오히려 핵 정밀화와 경량화에 착수할 것이다. 이를 토대로 북한은 경제제재(방코델타아시아문제) 해제, 각종 경제적 지원 등을 요구하며 협상의 주도권을 잡는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핵개발 중단 및 포기 선언, 핵사찰 수용 등 구체적 실천이 없는 한 직·간접적 압력을 행사한다는 일관된 방침이다. 북·미 관계가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는 햇볕정책에서 포용정책으로 이어지는 대북정책 때문에 6자회담 등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국제 관계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홍=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 금융제제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대화 등은 계속돼야 하고 이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공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쪽에 있다. 미국은 여전히 북핵문제 해결에 집중하지 않고 북한의 불법행위같은 부차적인 문제를 근거로 협상의 실질적 진전에 주력하지 않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은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하기 보다 북한의 안보 딜레마를 감안, 북한 핵 폐기에 상응하는 단계적인 이행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부시 행정부의 불량국가관 개선, 북한과의 평화공존 의지가 더 중요하다. 강경 일변도의 네오콘(신보수주의파·신공화당파)이 퇴조하고 대화를 강조하는 네오뎀(신민주당파)이 득세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 다수당이 되었기 때문에 부시 정부가 해왔던 대북 강경 정책은 타협을 중시하는 온건 정책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의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참여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문제에 대한 국내 의견이 통일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김=PSI는 지금이라도 참여해야 하며 전작권 환수는 자해 행위나 다름없다. PSI의 경우 70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는데 미국의 동맹국가인 한국이 인류평화를 위한 초보적인 국제 연대조차 참여할 수 없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PSI 참여로 우리의 능력에 맞는 공동 수색 등에 참여함으로써 선진국들의 군사적 노하우를 배우고 국제적 연대감을 가져야 한다. 통일이 될 때까지 현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안보적 실리인데 전작권 환수 논란으로 우리가 나서 미국의 짐을 덜어준 꼴이 됐다. 정권 교체가 되더라도 이 문제는 되돌리기 어렵게 됐다. 미국이 군사적 실리 차원에서 고민하던 문제를 풀어줬으니 다음 정부에선 단지 환수 시기를 놓고 다시 줄다리기를 해야 할 입장이다.
◆홍=현 정부가 PSI의 정식 참여는 유보하는 대신 역외 훈련 등 남북 무력충돌 가능성이 없는 부분에 대한 참여 가능성을 개진한 것은 현재로선 최선책이라고 본다. PSI의 목적과 원칙은 지지하면서 우리의 판단에 따라 참여 범위를 조절하는 선언을 함으로써 북핵 불용 의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북한과의 군사적 갈등 가능성도 피해갔다. 전작권 환수는 빠를수록 좋다. 미군의 전시작전 계획과 정보력, 첨단 무기에 계속 의존하다 미군이 철수해 버리면 작전권 환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전작권 환수 문제는 결국 우리의 능력과 의지 그리고 시간 문제일 뿐이다. 한국군은 앞으로 대북 단독 억지력 갖추고 협력적 자주국방을 확립해야 한다. 전작권 환수 시기를 놓고 협상을 계속해야 겠지만 독자적인 작전권 행사를 위해 한시라도 빨리 가져와야 한다.
-지난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으로 많은 진통을 겪었다.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는 한·미 FTA 협상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나?
◆김=미국의 첫 FTA 협상 파트너로써 좋은 결과를 얻어내야 한다. 내년 2월 말까지 양국은 충분히 의견을 교환하고 시한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 미국은 실패할 경우 신속히 또다른 협상 파트너를 찾아나설 수도 있다.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고 있고 국내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감안할 때 과거 지향적인 무조건적 FTA 반대에 나서기보다 신자유주의의 큰 물결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실리를 찾아야 한다. 3, 4년 후에는 경제 체질이 크게 개선될 것이다. 특히 최근 수입 품질검사시 쇠고기 뼛조각 파동 등은 하나의 사례로 미국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 농수산물 등 1차 산업에선 피해를 받겠지만 오히려 고부가가치 3차 산업에서 누릴 이득이 더 큰 것임을 국민들을 상대로 설득해야 한다.
◆홍=한·미 FTA 체결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대다수 국민의 기초생활 보호나 일터 보전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한·미 FTA 체결로 피해를 받을 분들에 대한 지원 대책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음을 국민에게 입증해야 한다. 서민들의 지지로 집권한 참여정부가 단기적으로 많은 국민들의 생계에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한·미 FTA를 쇠고기 수입 개방, 스크린 쿼터 축소 등 일방적인 양보를 앞세워 임기 중 타결 과제로 적극 추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제라도 정부는 영세민 생활 보호 및 양극화 해소라는 국민의 여망을 감안하여 FTA 협상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특히 경제의 형평성 제고를 저해한다면 협상을 차기에 넘기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세계 주요 통상국들이 빠른 속도로 FTA 시장을 선점해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업종별 경쟁력을 감안한 점진적 개방을 해야 한다.
정리=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김영욱기자 mirage@msnet.co.kr
※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국제관계 전문가로 6자 회담에 대해 활발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마포고·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미 코넬대 행정학과 석사과정을 거쳐 시카고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를 하며 '미일 동맹의 역사와 작동원리'로 논문을 썼다. 이후 일본 게이오대학 정치학과 객원교수를 역임하고 신아시아연구소 국제협력실장으로도 일하고 있다.
※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 수석연구위원=동북아 관계 전문가. 충북 출생으로 충암고·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공부했다. 프랑스로 유학해 파리1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 '고르바쵸프의 대미 냉전 종식 정책결정 과정 연구' 논문으로 정치학박사가 됐다. 대통령 정책기획위원회 자문위원, 동북아시대위원회 외교안보 전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등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폭넓게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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