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끝의 미학

입력 2006-12-30 09:45:38

모든 일의 '시작'은 이미 '끝'을 끌어안고 있다. 시작이 없는 끝은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다.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고, 낮이 가면 어김없이 밤이 오게 돼 있다. 자연의 理致(이치)는 이처럼 오묘한 攝理(섭리)를 거느린다. 시작과 끝을 그렇게 만들고 지우고 만든다. 자연이 신비롭고 아름다우며 위대한 건 시작에서 끝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畏敬(외경)스러우며, 언제나 마무리가 경탄을 자아내게 마련이다.

○…든든한 기초와 같은 시작이 중요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 집을 지을 때 기초가 그 집의 미래를 거의 결정해버린다. 磐石(반석) 위의 집과 모래 위의 집은 하늘과 땅 차이다. 좋은 땅에 나무를 심는 건 좋은 시작을 뜻한다. 귤나무를 척박한 땅에 심으면 탱자를 맺고 만다. 人生(인생)도 마찬가지다. 시작이 끝을 위대하게 성취하는 데는 얼마나 성실하고 슬기로워야 하는지를 자연의 여러 현상들은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시작보다 끝마무리를 잘 하는 智慧(지혜)가 더 중요하다. 끝마무리 지혜는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謙遜(겸손)'이 그중 가장 먼저 꼽히는 덕목이 아닐는지…. 겸손한 사람은 때를 알고 있으며, 자기의 한계를 분명하게 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제대로 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겸손하면 '해서는 안 될 일'을 알 뿐 아니라 그런 일을 절대로 하지 않는 법이다.

○…올해는 그야말로 어렵고 어지러운 한 해였다. 경제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의 오만과 獨善(독선), 무능과 무책임 등으로 '어느 한 곳 성한 데가 없다'는 말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살기 힘들다'는 사람들의 아우성도 무성했다. 오죽하면 '구름만 빽빽하고 비는 안 온다'는 말이 膾炙(회자)됐을까.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겨울 속에는 봄의 씨앗이 이미 담겨 있지 않은가. 지금은 한 해의 끝이지만 새로운 한 해의 씨앗을 품고 있다. 탈도 많고 말도 많던 2006년도 이젠 딱 하루 남았다. 저물어가는 황혼녘에서 끝마무리를 잘 하는 지혜를 떠올리며, 겸손의 미덕을 생각해보자. 새해의 希望(희망)을 찾을 근거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기보다 새로운 문을 열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지면서 새 달력을 걸 채비를 하자.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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