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접한 어느 여성 응모자는 복받치는 감정을 가눌길이 없어 기어이 울음보를 터트렸다. 또 한 응모자는 당선 전화를 받고 거듭 감격의 변을 늘여놓고는, 그래도 미덥지가 않았던지 아내에게 다시 확인전화를 하게 해서는 함께 목이 메었다. '신춘문예 당선' 소식이란 전하는 사람의 가슴도 그렇게 먹먹해질 따름이다. 참으로 행복한 겨울날이었다.
대구 대건고 시절부터 신춘문예 투고를 시작했던 안도현 시인은 "원고를 묶고 우표를 붙이는 행위까지도 문학"이라고 했다. 신춘문예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숙연한 자세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소설가 이연주 씨는 지난 11월 본지 칼럼란에서 "'문학병'이란게 있다.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그 병은 마치 무병처럼 어느날 갑자기 다가와 맑은 영혼에 서슴없이 꽂힌다. 대개 느지막한 나이에 문학동네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학창시절에 한번쯤 그런 병을 앓아 본 사람들이다"라는 글을 남긴 적이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신춘문예에 목매게 하는가? 형극(荊棘)의 여정 끝에 당선의 영광을 누렸다 한들 그만한 세속적 보상이 뒤따르지도 않는 이 '위기의 문학시대'에.... 더러는 재능있는 사람들이 문학적인 분야로 삶의 진로를 택한다 해도, 돈이 되는 영상예술이나 문화산업 쪽으로 몰리기 일쑤인 요즘 세상에....
신춘문예가, 문학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그러나 신춘문예는 여전히 한국의 예비문학도가 가장 선망하는 꿈의 등용문이다. 새해 벽두의 신년호 지면을 전면 할애해 한 작가의 탄생을 축복해주는 신춘문예야 말로 신예작가에게는 그 무엇보다 매혹적인 등단의 길인 것이다.
그 강렬한 매혹이 우리 문학을 살찌우는 동인이요, 그 결실은 한 문인의 화려한 등장을 넘어 풍성한 문학축제의 장이 되기도 한다. 신예작가의 등장이란 그 자체가 알게 모르게 당대를 지배하는 지배이데올로기와 그것에 오염되고 각질화 된 언어에 새로운 활력과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의 존재론을 웅변한다. 이제 더이상 독자들이 문학을 향해 지녔던 신비감과 진지성 그리고 지혜에의 열망과 낭만적인 꿈, 나아가 비판적 인식을 기대하지도 않을 것 같은 이 디지털문명시대에, 그래도 문학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그 대답은 여기에도 있다. 몇해전 계명대신문사가 주최한 강연에서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문학은 시간의 때를 타지 않고 문명의 변화라는 파고를 이겨낼 수 있는 인류의 영원한 문화적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전체주의 세력 앞에서 지켜내야 할 자유의 정신처럼, 시장경제의 타락 속에 추구해야 할 평등의 이상처럼, 문학은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불가결한 덕성과 창조에의 열정을 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20세기 후반 영국 법조의 신화적인 인물로 꼽히는 알프레드 데닝 판사조차 "판사는 훌륭한 시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으니.... 문학이야말로 인류가 지녀야 할 고결한 정신의 영원한 원천인 것이다. 문학은 그 자체가 자율성과 삶의 가치가 어우러진 협주곡이라 했던가.
바야흐로 숱한 문학지망생들이 막바지 불면의 밤을 지새우던 신춘문예의 계절도 기우는 한해와 더불어 저물었다. 열매를 맺지 못한 수많은 문학에의 열정들은 이제 사위지 못한 불잉걸로 남아 내년이면 또다른 모닥불을 피워올릴 것이다.
여드레 앞으로 다가온 매일신춘문예 시상식이 기다려진다. 신년 벽두 문단의 새별로 떠오른 신인들의 상기된 표정과 선배 문인들의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가 클로즈업되면서 대구의 문학동네가 겨울 한밤 또 한바탕 후끈 달아오를 일이다. 신춘문예를 위해 건배! 문학을 위해 건배!
조향래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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