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6년 전에 졸업한 한 제자를 만났다. 그녀의 요구에 못 이겨 반월당역에 내렸다. 근처의 생맥주집에 들러 500CC 두 잔을 주문해 놓고 마주앉았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하다가 주문한 생맥주가 나올 무렵 그녀가 불쑥 물었다.
"선생님, 몇 년 전에 늦둥이를 보셨다면서요? 요즘 많이 귀여우시죠?" 뚱딴지같은 그녀의 물음에 나는 한동안 아뜩히 앉아 있었다. 지난 연말인가 반월당역 지하도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한 제자가 그렇게 불쑥 묻더니 이 녀석도 판박이처럼 묻는구나 싶어서였다.
하긴 소문의 빌미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 녀석들이 졸업한 이듬해 어느 반 교실에 수업하러 들어갔더니 고3답지 않게 손뼉을 치며 난리가 나 있었다. 영문을 몰라 멀뚱히 서 있는 나에게 여기저기서 "득남을 축하드려요."하더니 즉석에서 '생일 축하합니다' 대신에 '득남 축하합니다'로 개작해 합장까지 해댔다.
한바탕 난리법석을 떤 뒤에야 교실 분위기가 가라앉았고 나는 수업하기 전에 그것이 헛소문임을 차분한 목소리로 해명했다. 그렇게 다 끝난 줄로만 알았던 소문의 불씨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꺼지지 않고 타고 있다는 게 여간 신기하고 놀랍지 않았다.
나는 그때의 내력을 설명해 준 뒤, 혹시 친구들이 오해하고 있거든 대신 해명 좀 해 달라고 당부까지 했다. 내 말이 진실임을 안 제자는 어이가 없어 픽 웃음을 쏟뜨렸다. "결국 말이 와전되었군요. 우리 국어 쌤 (문단에) '등단'했단다가 '득남'했단다로…. 말도 안돼."
말도 안 되는 것이 말이 되는 게 소문이다. 공자의 제자 증삼은 효성이 지극한 인물이었다. 그가 노나라 비(費)라는 곳에서 살 때 그와 성과 이름이 같은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다. 누군가가 이 사실을 잘못 알고 그 어미에게 일러바치자 처음에는 들은 척도 않던 그 어미가 두세 사람이 번차례로 고해바치자 마침내 짜고 있던 베틀의 베를 끊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니 소문의 위력을 능준히 짐작할 만하다.
올 한해도 저물어 간다. 이제 며칠 지나면 우리의 운명을 가름할 대선의 해가 얼굴을 가린 신부처럼 다가온다. 새해에는 허무맹랑한 소문의 그림자가 국민의 눈을 가리고 진실을 덮는 일이 없기를 기원해 본다.
이연주(소설가·정화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