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부인과 입원실에서 본 포옹
5년전 대구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본 풍경이다. 6인실이었는데 5명의 산모가 입원해 있었다. 산모들마다 가족들이 찾아와 축하와 덕담을 주고 받았다. 오직 한 산모는 찾아오는 가족이 없었고 행동이 조금 이상해 보이는 남편이 옆에 앉아 이리저리 텔레비전 채널만 돌렸다. 그의 아내는 옆 산모를 찾아온 손님들과 수다를 떨거나 큰소리로 웃기 일쑤였다. 아내 역시 어딘가 조금 정상이 아닌 모양이었다.
산모를 찾아왔던 가족들이 돌아가고, 병실에는 다섯 명의 산모들과 남편들만 남았다. 이윽고 아기를 입원실로 데려와 수유하는 시간이었다. 산모들은 모두 아기에게 젖을 먹이거나 안 나오는 젖을 짜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 행동이 좀 이상해 보였던 부부는 젖 먹일 생각은 않고 아기를 '꼬옥' 껴안고 훌쩍훌쩍 작은 소리로 울기만 했다. 이전까지 텔레비전만 보거나, 큰소리로 웃으며 수다 떨던 모습과 판이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부부는 어린시절 고아가 됐으며 염색체에 이상이 있다고 했다. 남편과 아내 모두 30대 후반으로 첫 아기라고 했다. 몇번 임신을 했지만 모두 유산했다고 했다. 큰 소리로 수다스럽게 웃던,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그 산모가 아기의 얼굴에 눈을 붙박고 어르는 모습은 행복으로 충만해 보였다. 입은 아기를 어르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 아버지와의 어색한 포옹
세상에 태어나 아버지와 만난 지 37년. 적어도 내 기억이 닿는 한도에서 아버지는 '미안하다.'는 말 한번 한 적이 없는 매정한(?) 분이셨다. 행여 실수를 하시더라도 "그 일은 잘못됐다."고 표현할 뿐 자신의 불찰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신만의 완고한 성(城)에 갇혀 사신다고 생각했다. 철 들고 나서, 아버지에게 "그건 잘못 하셨어요."라며 대들 나이가 되고 나서, 포옹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뭔 짓이냐"며 내칠 것만 같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가던 날, 서른셋에 본 첫 아들이 군대가는 날도 아버지는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다. 용기가 필요했다. 문 밖을 나서다가 갑자기 돌아서서 아버지를 꼬옥 껴안았다. "고맙습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당신보다 훌쩍 커버린 아들의 품에 안긴 아버지는 한참을 가만히 계시다가 두 팔을 올려 어깨며 등을 어루만져주셨다. "고맙다. 이렇게 잘 커주니. 부디 몸 잘 건사하고, 편지 자주 쓰도록 해라."
훈련소에서 받은 어머니의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너를 보내고 아버지가 많이 우셨다. 내색은 안하시지만 밤새 뒤척이셨단다." 집에 가면 아버지를 자주 안아드리리라 다짐했지만 쉽지 않았다. 겸연쩍기도 하고, 그럴만한 자리도 별로 없었다.
결혼한 뒤 직장생활에 지친 어느 날, 술에 취해 아버지를 찾아갔다. 많이 늙으신 아버지를 보고 나도 모르게 설움이 북받쳤다. 초등학교 시절이 지나고 아버지 앞에서 그렇게 울어본 적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버지가 조용히 안아주셨다. "힘들지? 세상 살아가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지? 그래도 기운내야지. 이제 어엿한 가장인데."
이제 칠순을 앞두고 계신 아버지. 얼마나 더 안아드릴 수 있을까? 지금도 힘든 일을 겪다보면 아버지의 따뜻한 포옹이 그리워진다.
△ 안아 주고 싶은 사람
얼마전 한 엄마는 17살의 예쁜 딸아이를 잃었다. 아이가 회복되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아이가 오히려 엄마를 위로 하면서 투병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래도 마음이 조금 가벼웠는데... 기어코 엄마 곁을 떠났다고 한다.
이말을 전해 듣는 순간 그 엄마를 만나 꼬옥 안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같이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아무 말없이. 어떤 말이 그녀를 위로 할 수 있으며 어떤 글이 그녀에게 위안이 될까. 그저 말없이 꼬억 껴안고 그녀의 등을 쓸어주고 싶었다. 자식을 키우면서 자식이 주는 아픔만큼 큰 아픔이 없고 자식이 주는 기쁨만큼 큰 기쁨이 없다는 것을 조금씩 알고 있기에 그녀의 아픔이 더욱 가슴 아리게 다가온다.
바람 부는 겨울들판으로 그녀와 걸어보고 싶다. 그리고 시린 하늘아래서 그녀를 깊게 안아주고 싶다.
김수용기자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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