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가는 한 해

입력 2006-12-28 11:34:58

포근하던 날씨가 겨울답게 싸늘해졌다. 찬바람까지 불어 體感溫度(체감온도)는 한층 낮아져 세밑의 착잡한 기분을 한층 자극한다. 올해, 짧지만 한 시대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였던 최규하 전 대통령이 갔고 한국인 최초 유엔전문기구 수장에 오른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도 갔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씨도,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을 정리하기조차 간단치 않은 신상옥 영화감독도 갔다.

◇거지였고 거지 구제사업을 벌였던 '거지왕' 김춘삼 씨, 사상 첫 북한을 탈출, 귀향한 국군포로 조창호 예비역 중위, '박치기왕' 김일 프로레슬러도 전설 속으로 갔다. 바둑계의 선구자 조남철 프로기사도 갔고 개그맨 김형곤 씨도 때 아니게 갔다. 살아 움직이던 계층과 환경은 달라도 누구 하나 파란만장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未完(미완)이건 아니건 아쉬움이 남지만 떠난 사람의 일생은 일단 종료되고 완성됐다.

◇가고 있는 사람들이 한 해가 가는 길목에서 기억하기 위해 만들고 또한 떠나 보내기 위해서 만들어 내는 것들도 있다. 그 중 하나가 '올해의 단어'다. 비교적 어려운 단어를 뽑아내 빈축을 사기도 하는 교수신문 선정 '올해의 사자성어'는 '密雲不雨(밀운불우)'다. 교수신문 필진과 주요 일간지 칼럼니스트 교수 등 208명 중 48.6%가 여러 제시어 중 선택한 말이다. 비는 오지 않고 먹구름만 잔뜩 끼었다는 말로 폭발 직전의 상황을 의미한다.

◇미국의 한 출판사는 네티즌 투표를 통해 올해의 단어로 '트루시니스(truthiness)'를 뽑았다. 트루시니스는 사실(fact)에 근거하지 않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진실로 받아들이려는 성향을 뜻하는 신조어. 지난해 후반기부터 유행해서 올 초 미국방언협회가 '2005년의 단어'로 선정하기도 했다.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공모로 뽑은 '올해의 한자'는 '命(명)' '목숨'이다.

◇한편 人本主義(인본주의)를 강조해온 독일어협회는 신년초에 지난해 '최악의 단어'를 선정한다. 20세기 최악의 단어로 '인적 자원'을 뽑은 바 있는 독일어협회는 2005년 '퇴직 생산성' 2004년 '인간 자본'을 '최악의 단어'로 선정했다. 2006년 최악의 단어가 기대되는 것은 그렇게 해서 '최악'이 사라져 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트루시니스'를 뽑은 출판사 회장은 "진실이 무엇으로 구성돼 있는지 의문인 사회에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게 또 한 해가 간다.

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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