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를 찾아서] (불교⑨동화사)연간 400만명 마음씻는 넓은 도량…"총림 돼야"

입력 2006-12-28 07:39:18

대구 사람들은 행복하다. 조금만 나가면 비로봉을 중심으로 무려 16 km에 걸쳐 웅장한 산세를 펼치는 팔공산이 있고, 거기에 봉황이 노니는 불교 성지 동화사가 있다. 가까이있어 뜻밖에도 깊이 들여다보지 않게 되지만,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는 연간 4백만명이 찾아드는 큰 도량이다. 최근 '팔공산 석굴암'으로 이름을 바꿔 동화사 말사가 된 군위 제2 석굴암을 포함하여 무려 107 개의 말사, 염불암 내원암 비로암 부도암 양진암 보현사를 포함한 10 개의 산내 암자 및 포교당까지 있어 제9교구의 오랜 숙원인 '동화 총림'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한국불교의 골간을 이루는 영남불교의 중심 성지로 산문(山門)을 연 지 올해로 1513년. 사부대중의 화합을 기반으로 하루를 천년처럼, 천년을 하루처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온 팔공산 동화사는 각기 다른 사연과 마음으로 이곳으로 찾는 불자들을 부처님 중심으로 새롭게 엮어내면서 영원한 성지로 거듭나고 있다.

◆ 동화사 종소리는 팔공산 8경 중 하나

누군가 동화사 종소리를 약사봉 새벽별, 무심봉 흰구름, 제천단 소낙비, 적석성 밝은 달 등과 함께 '팔공산 8경'이라고 읊었다. 해가 지고 저녁 예불시간에 원음각(종각)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는 마음의 눈을 뜨고, 진리에 귀를 열라고 한다. 절을 내려와 도심에 들어서도 동화사 종소리는 따라다니며, 무명에서 깨어나라고 울린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낮을 피해, 해저물녁 동화사를 다녀오면 왠지 세속에 찌든 마음이 깨끗히 정화되는 느낌에 젖는다. 동화사를 제대로 느끼려면 새길 대신 옛길로 걸어올라갈 일이다. 동화사 측에서 복원 원력을 세운 옛길을 택하면 우선 주차장 맞은편 높은 바위에 서있는 마애불입상(보물 제243호)을 만날 수 있다. 거기서 구세 약수터로 가는 갈림길 길목에 역시 보물인 동화사 당간지주가 서있다. 당간지주 동북쪽으로 금당선원이 나오고, 인접하여 부도전 인악대사비가 나온다. 인악대사비(사진1)는 특이하게도 봉황 위에 세워져있다.

◆ 한때 승병지휘소 역할도

겨울철 나무들이 옷을 벗어야만 참나무 군락지의 기생식물인 겨우살이(사진2)도 눈에 들어온다. 팔공산에서는 동화사에서만 볼 수 있는 겨우살이에 매달린 얼음처럼 연한 꽃들은 새 밥이기도 한데, 사람에게는 항암효과를 지닌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들 밀생수림 바로 곁에는 사철 풍부한 수량의 계곡수가 물보라를 날리며, 흘러내려 모든 번뇌를 씻어간다. 색(色)과 욕(慾)에서 벗어나야 깨달음에 도달하느니라고 말하는 해탈교를 지나 옹호문을 벗어나면 동화사가 민족의 성지임을 알려주는 풍서루가 있던 곳이다. 풍서루는 임란시 사명대사가 영남도총섭으로 동화사에서 승병을 지휘했음, 동화사가 민족의 아픔과 함께 했음을 말해준다. '영남치영아문'이라는 편액이 봉서루 뒷편에 대웅전을 향해 걸려있다. '치영'(緇營)이란 조선시대 승려로 이루어진 군영을, '아문'(牙門)'은 군인들이 주둔하는 경내를 말한다. 원판은 통일대불전 아래 성보박물관에, 모각 편액이 봉서루에 걸려있다.

◆ 심지왕사가 동화사로 개칭

493년 극달화상이 창건하였고, 심지왕사가 832년에 겨울철인데도 오동나무꽃이 아름답게 피어있어 동화사(桐華寺)라 개칭했다. 보조국사가 4창(創)한 것을 비롯, 여러번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심지왕사는 신라 흥덕왕의 아들로 영심이 진표율사로부터 계법을 전해받은 다음 점찰법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으나 때가 늦어 법당에 올라가지 못하고 다른 무리들과 함께 땅에 엎드려 참례했다. 법회 7일 만에 큰 진눈깨비가 내렸는데, 심지의 둘레 열자쯤은 눈이 내리지 않아 모두 신기하게 여겼고, 결국 심지가 법통을 계승했다. 이후 심지왕사는 팔공산으로 돌아가 당을 짓고 간자를 모셨다. 옛길 입구의 마애불좌상도 심지왕사가 조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존 건물들은 대개 조선 영조대의 건물인데, 대웅전 봉서루 등에서 신라 거찰의 면목을 보여준다. 대웅전 주련에는 천지에 부처님만한 것이 없고, 온세계에 또한 비할데가 없다고 쓰여있다.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또 있을까?

◆ 비로자나불 호분 벗겨내

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통일대불을 포함하여 연중 수백만명이 몰려드는 동화사에서는 대중들이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도록 숙박이 가능한 기초지원시설을 비로암에 건립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비로암의 비로자나불(보물244호)에 도장되어있던 호분을 깨끗이 벗겨냈다. 파계사, 부인사, 송림사를 포함한 106개 말사에다 최근 국보사찰인 군위 제2석굴암까지 '팔공산 석굴암'으로 개칭되어 말사로 두게 되면서 동화사는 개산 2천년을 향해 봉황처럼 큰 날개짓을 하고 있다. "결국 산문을 열고 닫는 것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라는 허운 주지스님은 불자, 비불자들이 좀더 부담없이 쉽게 불교를 만나고, 그런 만남을 통해서 흙탕물 같은 세상 삶이 정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현대인들은 너무 불필요하게 속도에 집착 내지는 중독되는 경향이 있어 평생 먹을 것을 하루아침에 모으려고 하고, 물려줄 것까지 하루아침에 장만하려한다."는 허운 스님은 "좀더 자신의 문제를 철저하게 고민하고, 소유로부터 자유스러워지며, 삶의 속도를 조절해나갈 수 있는 힘은 자연과 함께 있는 사찰에서 잘 드러난다."며 그 역할을 동화사에서 맡겠다고 말한다. 결국 수행이나 삶은 거문고줄을 당기는 것과 같은 것일까? 너무 당기면 끊어지고, 너무 느슨하면 소리가 안나니 긴장과 균형을 잘 맞춘 중도적 삶을 택하여 마음의 평안을 얻고, 모난 마음 대신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달라고 동화사는 무언중에 말하는 것 같다.

글 최미화 기자 magohalmi@msnet.co.kr 사진 정우용 기자 v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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