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의 창의적 실전논술)주장을 펴자

입력 2006-12-26 07:28:31

논쟁적 사안일수록 분명한 주장을 펴자

논술은 특정 주제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글이다. 따라서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펴기 위해서는 논리적 전개 뿐 아니라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의 절충형 타협은 논지를 흐리게 할 뿐 아니라 논리적 오류까지 범할 수도 있다. 특히 논쟁적 사안일수록 자신의 주장이 특정 근거에 의해 타당한 것임을 일관성 있게 전개해야 한다. 양측의 논쟁 중 중요한 부분을 골라서 적당히 타협적 결론을 내리는 것은 대부분 바람직하지 못할 뿐더러 논지의 일관성을 잃기 쉽다.

프랭키는 복싱 트레이너였다. 그에겐 딸처럼 소중한 제자 매기가 있었다. 메기는 31살의 나이에도 불구, 데뷔전부터 KO 펀치로 승승장구해 세계 챔피언 타이틀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매기는 상대편의 반칙 펀치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었다. 메기는 말을 하는 것과 TV를 보는 것 외에는 자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손가락조차 움직일 수 없었고, 회복될 가능성도 제로에 가까웠다. 매기는 프랭키에게 자신이 죽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그래서 프랭키는 그녀의 자살을 도왔다. 인공호흡기를 떼내고 주사기로 약물을 주입해 주었다. 메기는 죽기 전 눈물을 흘리며 프랭키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프랭키는 자신의 딸처럼 사랑스러운 메기에게 죽음을 선물했던 것이다. 프랭키의 행위는 과연 용납될 수 있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안락사는 생존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일을 말한다. 안락사는 환자의 의지 여부에 따라 자발적 및 비자발적 안락사로 구분된다. 또 시술자에 따라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모르핀 과다 투여 조치 등으로 숨지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산소통 같은 생명 연장 장치를 제거하는 소극적 안락사로 분류되기도 한다. 특히 제시문의 프랭키처럼 매기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시술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논쟁의 여지가 많은 주제이다.

안락사의 허용과 금지를 놓고 자주 대두되는 찬반 대립의 논거는 ?환자 자신의 생명 결정권 인정 여부와 생명 존엄의 절대성 ?의사 및 가족의 생명 유지 의무 ?안락사가 주는 환자의 고통 경감 효과 ?가족의 경제적 부담 완화 효과 ?안락사 법제화 필요 여부 등이다.

프랭키의 행동이 옳다는 주장 또는 그릇됐다는 주장을 펼 경우 앞서 언급된 논쟁 현안을 제시해가며 주장에 힘을 싣도록 한다. 특히 다수가 동의할 수 있도록 공감이 가는 근거를 많이 동원하는 것이 좋다.

프랭키가 전신 마비가 된 매기가 죽음에 이르도록 도와준 행위는 '적극적 안락사'에 해당된다. 매기가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보호해주기 위해 프랭키가 취한 조치였다. 프랭키의 행위는 인간이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 만큼 죽을 때도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한 '인간의 존엄사(尊嚴死) 권리'에 동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매기에게 남은 건 사지가 마비된 채 식물인간으로 희망 없는 삶을 영위하는 방법뿐이었다. 오랜 기간 생존해 있기는 하나 평생을 고통 속에서 신음해야 하는 절망적인 삶이었다. 이 때문에 메기는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주장하며 프랭키의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고 프랭키 역시 고민 끝에 매기 자신의 생명 결정권을 인정해준 것이라 하겠다.

안락사에 반대하는 측은 생명은 존엄한 것이고, 인간이 자신의 생사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더 이상의 치유 방법이 없고 앞으로 살아야 할 생활이 인간적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기 힘들고 고통으로 점철될 것이 뻔한 상황일 때 최소한 환자 스스로 자신의 생명 선택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오히려 인도적 처사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메기가 계속 병원 신세를 져야 할 경우 가족 등 주위 사람들의 고통도 배가될 수 있다. 아무리 인간 생명의 고귀함을 외쳐댄다 하더라도 죽기를 원하는 환자를 인위적으로 살려둔 채 희망 없는 뒷바라지 간호를 해야 하는 가족 등 주변 사람의 고통도 엄청나게 마련이다. 과연 본인과 가족의 고통을 외면한 채 안락사를 지연시키는 것이 그들을 위한 길일까? 프랭키는 매기가 죽음을 선택하는 데 적극적 안락사 시술로 도움을 줌으로써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안락사에 관한 실정법에 과감한 도전장을 던졌다. 누가 프랭키를 단죄할 것인가.

매기의 현실적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실정법을 어기게 된 프랭키처럼 현실과 실정법과의 괴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안락사 법제화가 신중히 검토되어야 한다.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 환자의 안락사 요구가 다른 대안이 없음을 의사와 가족 모두가 동의할 수 있을 때 시행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성급한 결정을 막기 위해 안락사는 오직 의사만이 시행할 수 있게 하고 인지 능력을 갖는 환자일 경우 확인을 거치고, 또 언제라도 취소 가능하도록 여러 단계에서 보완 조치가 취해져야 하겠다.

논술 tip

①생명은 신성하고 존엄한 것이므로 인간이 함부로 자신의 생사 여부를 결정할 순 없다. 물리적으로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은 인간의 영역 밖의 일이다. ②그러나 소극적 안락사는 세계 각국이 합법화하는 추세이므로 인정할 수도 있다. 환자가 의사 능력이 있는 상태에서 결정한 소극적 안락사는 종교의 자유와 동등한 가치를 가지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③따라서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안락사는 금지되어야겠지만 소극적 안락사 범주에 한해 허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①은 원칙적으로 안락사에 반대하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힌 것인데, ②는 ①의 주장을 뒤엎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②가 예외적인 사항이 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해 주장이 일관성을 잃고 있다. ③을 통해 결국 타협적인 결론을 제시하고 있지만 오락가락하는 주장으로 논지가 초점을 잃고 있다

도마논술연구소장 (smilingbul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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