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산타' 재롱선물에 모처럼 웃음

입력 2006-12-25 10:25:46

대구영진고 봉사동아리 학생들 요양원 찾아

"크리스마스 선물? 뭐 거창하게 선물이야. 이렇게 와 주는 게 제일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이지."

23일 오후 대구 동구 불로동 마이홈 노인복지 요양원에 '젊은 산타' 10명이 불쑥 들이닥쳤다. 갑작스런 산타 출현에 적잖이 놀랐던 어르신들의 얼굴이 금세 환하게 바뀌었다. 이들은 영진고 2학년 봉사동아리 'RCY' 학생들. 지난 4월 이곳 요양원을 방문하면서 맺은 인연으로 매달 만남을 가져온 터라 '변장'을 해도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아들, 딸이 있고 손자도 있지만 이렇게 찾아오는 학생들이야말로 어르신들에겐 '피붙이' 이상의 손자들이었다. "찾아오는 사람들 모두 고맙지만 얘들 보면 특히 더 좋지. 오늘은 크리스마스라고 산타 복장으로 왔네. 어린 애들이···." 74세의 한 할아버지는 목이 멨다.

수염이 나기엔 아직 어린 나이의 이들이 산타랍시고 흰 수염을 붙이고 나타나자 진짜 희끗한 수염을 가진 할아버지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산타 복장을 한 신용섭(17) 군은 한술 더 떠 어르신들 앞에서 산타 흉내를 내며 악수까지 청했다. 이에 질세라 어르신들도 "선물 하나 주이소."하며 어린아이처럼 매달리자 요양원은 웃음바다가 됐다. 신 군이 선물 보따리에 미리 준비한 것은 각티슈. 뜻하지 않게 음식물이나 침을 흘리기도 해 하나씩 뽑아 쓸 수 있는 각티슈는 더없이 좋은 선물이다. 신 군은 "각티슈, 귤, 떡, 치약 등을 준비했지만 선물보따리가 작아 각티슈 예닐곱 개만 넣었더니 금세 가득찼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무엇보다 어르신들이 좋아한 선물은 바로 '놀이'. 어르신들은 산타 복장의 학생들과 어울려 퍼즐 맞추기를 하는가 하면 장기도 두고 프로그램용 블록으로 각종 모양의 도미노를 쌓으며 모처럼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학생들 옆에서 '이건 이렇게 가야지.' 하며 훈수를 두는 모습이 '할아버지와 손자' 처럼 보였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학생들은 중증치매가 있는 어르신들을 도와 수저질을 대신하며 밥과 반찬을 떠먹여 드리는 식사 도우미로 나섰다. 김수욱(17) 군은 "지난 번에 왔을 때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몇몇 어르신들은 다시 뵙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며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성심성의를 다했다."고 했다.

허모(69) 할머니는 "산타가 와서 말벗이 돼 줄 사람을 선물로 두고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소원이 이뤄졌다."며 "젊은 산타가 와서 직접 말벗과 놀이상대도 돼 줬으니 말이야."하며 흐뭇해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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