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웅산업 김종웅 회장(57)의 이력은 참 특이하다. 50년대 재건대, 넝마주이 속에 던져졌던 가출소년이 국내 최고의 염료기업가로 성장한 과정이 그렇다. 지금이야 남부럽지 않은 부와 명예를 갖고 있지만 그에게는 피눈물 나는 과거가 있다.
그가 태어난 곳은 경북 영덕군 발산면 옥산리 화전민 마을. 화전을 일구며 근근이 끼니를 때울 정도였던 집안에서 둘째인 김 회장의 중학교 진학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화전민촌에서 야학을 통해 공부의 꿈을 키웠던 김 회장은 이대로 산골에 눌러앉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가출. 대도시인 대구로 가면 뭔가 자신의 꿈을 이룰 길이 있을 것 같았다. 한데 무작정 영덕에서 포항으로 나와 탄 버스가 문제였다. 대구행이라고 생각하고 탄 버스가 느닷없이 부산으로 달려가 버린 것이다.
"당시 부산에서 버스를 내렸을 때는 앞이 캄캄했습니다. 13살 산골 소년이 생면부지의 부산 땅에서 뭘 알았겠습니까. 한참을 굶으며 부산거리를 헤매다 어떤 신사를 만났습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부산 공보원 계단에서 쭈그리고 있다 만난 신사는 그를 중구의 검정다리 밑으로 데려갔다. 그곳은 당시 재건대와 넝마주의, 소매치기, 거지들의 소굴.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민 밥그릇을 순식간에 해치운 그에게 이후 다리 밑 아이들이라면 다 해야 했던 일이 맡겨졌다. 껌팔이,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의 일이 차례로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듯 그에게도 귀한 인연이 있었다. 신문팔이를 하는 부지런한 김 회장을 본 염료상회 사장이 그를 직원으로 채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일이 그가 염료와 인연을 맺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다. 염료상회 사환 시절 꿈에 그리던 야간중학교를 다니기 시작해 야간 고등학교를 나올 무렵에는 이북 출신 사장이 그에게 수표책을 맡길 정도가 됐다.
군 제대 후 서울의 야간대학에 진학한 김 회장은 낮에는 염료회사 사원, 밤에는 대학생 생활을 했다. 당시까지 판·검사가 꿈이었던 그에게 낮의 염료회사 일은 힘들지가 않았다. 하지만 몇 차례 고시에서 낙방한 후 그는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 결심을 굳혔다.
79년 전화기 한 대로 시작한 사업은 80년대 호황기를 틈타 절정을 구가했다. 외국에서 피혁의 염료 원재료를 수입해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면서 소위'떼돈'을 벌었다. "당시에는 한해가 가면 10배씩 매출이 뛰었습니다. 매출이 하도 뛰니까 당시 국세청은 물론 정보기관에서도 주목을 할 정도였습니다."라고 말했다.
염료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면서 그에게도 고민거리가 있었다. 전량 외국수입에 의존하던 피혁 염료의 국산화 문제였다. 그는 "염료의 국산화가 안 되면 염료산업은 단순히 판매 마진만 먹는 장사에 불과했습니다. 또 당시 염료 산업을 이끌고 있던 유럽회사들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원료의 국산화가 시급했던 거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고민 끝에 회사 내에 종합연구소를 마련했다. 당시는 대기업도 이 분야 연구개발에 투자를 꺼리던 때였다. 화학연구자를 모았고 유럽에서 은퇴한 기술자들을 데려와 극진히 대접하면서 선진기술을 배웠다. 마침내 국산화를 이뤄냈고 89년 무역의 날에는 염료원료의 국산화 공로를 인정받아 산업훈장까지 받았다. 김 회장이 '염료산업의 개척자'로 불리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 그에게는 염료 기업가라는 이력 외에 또 다른 이력이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정치라면 '신물'을 냈던 김 회장에게 서울시의원을 해보라는 주위의 권유가 빗발쳤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91년 지방자치 부활과 함께 3대 서울시의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서울시의회에서는 대변인을 맡아 활동했다. 95년 시의원을 그만두고 회사 일에 전념하던 그는 또다시 서울 송파구의원에 출마해 송파구의회 의장을 맡게 됐고 초대 전국 시·군·구의회 의장을 했다.
그는 "무엇보다 기업을 이끌어야 할 기업인으로서 정치에 발을 디딘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난과 고통, 서러움에서 삶을 배워서 그런지 정치도 봉사 기회의 하나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상곤기자 lees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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