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기각 法·檢 갈등 '대법원 예규' 논쟁 비화

입력 2006-12-21 09:27:34

檢 "나라 망할 일이다"…法 "대응할 가치 없다"

중요 인사가 연루된 구속영장이나 압수수색 영장이 청구되면 이를 대법원에 보고토록 규정한 대법원 재판예규가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것인지 여부를 놓고 법원과 검찰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연이은 구속영장 기각이 대법원의 영향력 행사 때문이 아니냐는 의심을 품고 있는 검찰이 "사법권 독립 및 개인의 기본권 침해 우려가 있는 재판예규를 조속히 폐지하라."는 주장을 20일 내놓자 대법원은 "국가 기강이 무너졌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선 판사들도 검찰의 주장을 '언론플레이', '사법부 흠집내기' 등으로 의미를 깎아내리며 애써 외면하고 있으나 검찰은 "판사가 재판상황을 대법원에 보고하는 것은 나라가 망할 일이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어 영장 기각을 둘러싼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도 있다.

◇ 法 "대응할 가치도 없다"…외면 = 일선 판사들은 대체로 중요사건의 접수 사실 및 재판 결과를 대법원에 보고토록 규정한 재판예규가 법관의 독립을 침해했다는 검찰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검찰이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거나 '검찰이 재판업무에 간섭하며 사법부에 흠집을 내려 하고 있다.'는 우려도 일선 법원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중요사건이 접수되면 내용을 간단히 대법원에 통보하기는 하지만 '이런 사건이 접수됐다.'고 알려주는 성격일 뿐이다. 재판예규에 따른 통보를 부담스럽게 느꼈다든지, 대법원이 재판에 간섭하려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구속영장이나 압수수색영장이 청구되면 일선 법원 영장계 직원들이 범죄사실 요지를 복사해 대법원에 전달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 檢 "나라 망할 일이다"…격앙 = 검찰은 중요사건의 진행 과정과 내용을 대법원에 보고하도록 규정한 재판예규 규정을 통해 대법원이 일선 판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며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대검의 한 중견검사는 "상황보고를 하도록 법률상 의무가 지워져 있는 검사들과 달리 일선 판사들이 재판 진행상황을 일일이 대법원에 보고하는 것은 '법관의 독립' 을 해칠 수 있는 독소조항"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일선 판사들이 인사권을 쥐고 있는 대법원의 눈치를 봐 가며 재판할 수밖에 없고, 그 반대로 대법원이 인사권을 내세워 재판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도 검찰 내부에서 잇따르고 있다.

검찰은 보안이 유지돼야 할 피의자 혐의사실이 법원의 내부보고 과정에서 외부로 흘러나갈 수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 재판예규란 = 검찰이 문제를 삼은 '중요사건의 접수와 종국 보고'라는 명칭의 재판예규는 1980년대 초 마련된 일종의 법규이다. 대법관 전원이 참석하는 대법관 회의에서 만들어지거나 개정되기도 한다.

재판예규는 '각급 법원의 압수·수색, 구속영장 발부는 물론 중요 형사·민사·행정 사건의 진행과정과 내용을 지체없이 대법원에 보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요 보고 대상은 국회의원, 국무위원, 정부위원, 법관을 포함한 전·현직 법원공무원, 검사, 변호사 등이며 선거·부패 범죄와 사형이 선고된 사건도 포함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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