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되기전에 제대로 풀어라
얼마 전 방송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에서 아버지 나양팔(박인환)이 가슴을 쥐어짜며 쓰러진 장면을 본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네 명의 딸 때문에 생긴 속상함이 가슴 한 구석에 응어리 진 것이 아닐까?
화병은 억울한 감정이 가슴에 응어리 즉 '한'(恨)으로 남아 그것이 여러 가지 신체적, 정신적 증상으로 불(火)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한의학에서 화는 일종의 스트레스이며, 스트레스로 인한 현상으로 해석한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의 흐름에 장애가 생기고 양미간이나 가슴에 뭉치게 된다. 이렇게 억울한 감정으로 인해 뭉친 기가 풀어지지 못하게 되면 가슴이 답답하거나 심장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붉어지고 불안감, 우울의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 지난 1995년 미국정신의학회는 '화병'(hwa-byung)이라는 우리말 용어를 정신의학용어로 등록했다.
◆원인
미국정신의학회는 화병을 한국의 민속증후군이라고 정의했다. 우리 스스로 '한(恨)의 민족'이라고 부르기까지 했으니 서구인들이 그렇게 여기는 것도 당연할 듯하다. 치솟는 물가와 집값,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교육비,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빈익빈 부익부' 등 근심과 불안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것들이 화병을 부른다.
화병의 원인은 인간관계(배우자, 시가와 처가)에서의 갈등, 과도한 업무, 사업실패, 자녀의 비행이나 시험낙방, 지병, 가족의 갑작스러운 사망, 정보의 홍수, 교통체증, 정치에 대한 불만, 치솟는 물가, 집세의 폭등 등 다양하다. 특히 신경질적인 사람, 강박적인 사람, 광신적인 사람, 우울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증상
가슴이 답답하고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가장 특징적인 증상이다. 잘 놀라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목이나 가슴에 덩어리 같은 것이 뭉쳐진다, 항상 피로하며 무기력하다, 머리가 항상 아프다. 여기에 불안, 불면, 초조감이나 우울감이 동반된다. 그러나 모든 환자들의 증상이 일률적인 것만은 아니다. 위에 소개된 특징적인 신체증상과 감정반응 외에도 '목에 무엇인가 걸린 것 같다.', '가슴이 뻐근하다.', '식욕이 없고 소화가 안 되고 자주 체한다.'와 같은 증상을 호소하기도 한다. 공통적인 것은 이들이 이미 병원에 오기 전부터 '내가 화가 쌓여서 이렇지.'하는 막연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갑자기 사업이 실패하거나 돈을 때이고 억울한 처지에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시어머니한테 구박을 많이 받았다.', '남편이 술만 마시면 주정을 하고 나를 때린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속을 많이 섞인다.' 등의 오랫동안 쌓인 문제에 시달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병의 진행 단계
화병은 보통 일정한 경로(충격기, 갈등기, 체념기, 증상기)를 밟는 경우가 많다. 충격기는 초기의 격한 감정의 상태로 상대에 대한 배신감, 증오심이 일어난다. 이때는 개인적 성향에 따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경우와 소극적으로 덮어 두려는 경우가 있다. 이 단계가 지속되면 화에 대해 어떻게 대처 하느냐의 문제를 가지고 갈등기가 이어진다. '화를 참느냐 마느냐.'의 순간적인 갈등에서부터 '회사를 그만두느냐, 이혼을 하느냐.' 등의 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이 시기에 전형적인 불안증이 나타난다. 갈등기가 장기간 지속돼 참는 생활이 오래되면, 상대방에 대한 싸움을 포기하고 전신의 무력감을 가지게 되는 체념기가 찾아온다. 우울증, 무력감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단계를 거치고 나면 화병의 신체증상이 나타나는 증상기가 온다. 정신적 고통이 몸에서 반응을 일으켜 각종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
◆한의학에서 보는 화병
한의학에서 화병의 원인은 기의 원활한 소통이 되지 않아 간에 기운이 쌓여 뭉쳐지는 간기울결(肝氣鬱結)의 단계, 오랫동안 뭉쳐진 기가 화로 변하는 울구화화(鬱久化火)의 단계, 이 화로 인해 신체 불균형이 초래되는 수화불교(水火不交)의 단계로 나타난다.
화병치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나타나고 있는 증상을 없애는 것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환경을 어떻게 바꾸느냐는 것이다. 증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가슴에 뭉친 기를 풀어주는 방법, 열을 가라앉히는 방법, 위로 올라간 화와 아래로 내려간 한랭의 기를 순환시키는 방법, 날카로운 신경을 안정시키는 방법 등을 고려해 치료한다.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 대한 개선도 무척 중요하다. 증상의 개선이 어느 정도 이뤄지면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과 대화를 가지고 환경을 고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참고 지내는 생활이 결코 병을 낳게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예방법
화병은 자기 앞에 닥쳐오는 어려운 일에 잘 대처하지 못하여 생기는 일종의 만성 스트레스 반응이다. 따라서 능동적인 사고방식과 적극적인 대인관계 또한 효율적인 스트레스 해소가 중요하다. 첫째,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진실한 대화자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깊은 심호흡으로 정신과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명상이나 목욕도 도움이 된다. 셋째, 규칙적인 생활로 리듬을 살려야 한다, 낮에는 햇빛을 많이 쏘이도록 한다. 넷째, 반드시 일과 중에 전신에 땀이 나도록 30분~1시간의 운동을 하도록 한다. 운동을 하면 평화와 안정을 일으키는 엔돌핀같은 호르몬이 증가한다. 다섯째, 열등감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자신을 타이르고 이를 반복하도록 한다. 모든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은 열등감임을 명심하자. 여섯째, 긍정적인 사고로 전환하자, 참을 수 없는 성격, 끝까지 부정적이고 편협한 생각을 가지면 화병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 일곱째, 가족의 협조가 필요하다. 고통을 이해하고 나누어 가지려는 가족과 동료,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과 실질적인 역할 분담이 화병을 치료해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 자신을 발전시키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 자신의 능력과 처지에 맞는 소질과 능력을 적절한 취미와 여가 선용으로 십분 발휘해야 한다.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도움말·노희목 태백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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