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프로는 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거듭 되뇌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패했다는 것이 무척이나 두려웠고 운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한마디로 충격이 컸죠."
세번의 천하장사와 18차례 백두장사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모래판의 황태자'로 군림했던 이태현(31·이지스). 지난 8월 씨름판을 떠나 일본의 종합격투기 '프라이드(PRIDE)' 격투사로 나섰다. 그러나 9월10일 일본에서 가진 데뷔전에서 브라질의 히카르도 모라에스에게 처참하게 패배했다. 오죽했으면 이만기가 "피눈물이 난다"고 까지 했을까.
씨름선수가 격투기로 진출한 것은 K-1의 최홍만에 이어 이태현이 두번째. 첫 경기이후 그는 지금까지 언론과의 접촉을 거부한 채 실전에 버금가는 연습만 거듭하고 있었다.
그를 대구에서 만났다. 그는 요즘 매일 아침 팔공산 갓바위를 오르내리고 월드컵경기장을 뛰면서 체력을 기르고 있다. 오후에는 복싱과 타격, 혹은 얻어맞는 연습을 하면서 격투사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사나워지기위해 저녁마다 생고기와 육회를 먹고있습니다."
생고기를 먹으면 동물처럼 사나워진다고 해서 먹는단다. 프라이드 데뷔전에서 보여준 그의 몸놀림은 '양순한' 씨름선수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모라에스를 링바닥에 두차례나 넘어뜨렸지만 주먹 한 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다. 격투기 선수는 기질부터 바꿔야 했다. 본인은 기억하기도 싫겠지만 데뷔전 얘기를 다시 꺼냈다.
"팬들이 비난에 가까운 리플을 달았을 땐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이까짓 것'하면서 쉽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얼굴을 그렇게 맞아본 것도 처음입니다. 눈을 뜰 수가 없었고, 주먹이 나가지않는 것에 대해 스스로 화가 나서 흥분했습니다."
'프라이드'의 벽은 높았다. 그에게 만만한 상대도 없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첫 승입니다. 그 다음 목표는 2승이겠죠."라며 웃는다.
이태현은 이제 조금이나마 여유를 찾았다. 맞아봐야 때릴 수 있다며 실전보다 강도높은 훈련을 계속해왔기 때문이리라.
"눈뜨고 맞으라고 해서 맞았더니 눈이 찔려서 뜰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맞는 요령을 터득, 맞고도 바로 뜹니다."
체력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매일 두시간씩 갓바위를 오르내린 덕분에 한바퀴만 돌아도 허덕대던 월드컵경기장 주변을 이젠 세바퀴 돌아도 거뜬하다.
대구에서 체력과 타격(복싱)연습에 집중한 그는 18일 일본으로 건너갔다. 팬미팅이 있지만 체계적인 실전연습을 하기위해서다. 이어 러시아에 가서 전지훈련을 마친 후 내년 5월경 두번째 경기를 할 계획이다.
그 때쯤에는 자신있는 경기를 할 수 있을까. "'프라이드'에는 약한 상대가 없습니다." 프라이드 챔프 '효도르'나 '크로캅'과 바로 맞붙을 수도 있다. "언제쯤 제대로 경기할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하지만 두번째도 첫 경기처럼 한다면 더이상 (매치를) 안붙이겠죠." …
하긴 프라이드무대에서는 1승, 1패가 중요하지 않다. "씨름에서도 바로 천하장사가 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그의 말처럼 오래지않아 당당한 격투사 이태현으로 불리게 될 것을 그는 자신한다.
이태현은 여전히 씨름선수다. 약육강식의 정글같은 프라이드무대에서도 그는 씨름선수로 나선다. "씨름은 고향입니다. 중·고교시절 6년간 지도해 준 의성의 김영구, 이관덕 감독님과 최종만 코치가 없었다면 지금의 이태현은 없습니다. (프라이드에서)성공하든 실패하든 언젠가는 돌아오겠습니다."
그는 아직 체력과 서브미션 타격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하다. 그러나 196cm 131kg에서 나오는 파워는 격투기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첫 패배 직후 오른쪽 눈을 꿰매고 퉁퉁 부은 얼굴로 기자회견을 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강한 자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훈련밖에 없습니다. 무엇으로 마무리해야 할지 경기중에는 기억나지도 않았습니다."
킥과 타격, 그라운딩, 서브미션 등 그가 익혀야 할 기술은 많다.
무엇보다 그는 두살배기 아들과 아내에게 미안해했다.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는 아내때문에 인천 영종도 신도시에 집을 뒀지만 훈련 때문에 집에 가지 못해서 미안했고 또 맞는 모습을 보여줘서 마음이 아팠다.
2007년. 그는 달라진 모습으로 사각의 링에 다시 설 것을 다짐한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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