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과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간 '수도권 규제완화'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다시금 불붙고 있다.
정부가 수도권에 LG전자 등 4개 대기업의 공장 증설을 허용한 탓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참여정부들어 꾸준히 강조해 온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공약을 스스로 저버렸다. 더욱이 이번 조치는 지방균형발전의 핵으로 추진해온 지역 혁신도시 건설 사업이 첫 삽을 뜨기도 전에 이뤄져 실망을 더한다.
참여정부들어 수도권에 공장신증설을 허용한 것이 사실 이 번이 처음도 아니다. 정부는 지방 분권과 국토 균형 발전을 내세우면서도 이미 세차례나 수도권의 손을 들어줬다. 2003년에는 LG필립스 LCD 파주 공장 신축을 허용했고 2004년에는 삼성전자와 쌍용자동차 등의 공장신증설을 허용했으며 지난해에는 LG화학 등 8개 첨단업종의 신 증설을 허용한 바 있다.
'수도권 규제완화'의 직접적 혜택을 누리게 된 경기도는 매우 다행이라며 즉각 정부 손을 거들고 나왔지만 이를 지켜보는 지역 민심은 씁쓸하기만하다. 경기도는 한발 더 나아가 "이번에 허용된 4개사의 투자규모는 3천500억원으로 현재 수도권에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37개 기업 56조원의 6%에 불과하다"며 추가로 공장신증설을 허용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야금야금 이뤄지고 있는 수도권 규제 완화에 별 반응이 없을 경우 현재 13조원 규모의 하이닉스 이천공장을 비롯해 56조원의 투자를 독식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국가 균형개발을 강조해 온 정부 또한 이에 대해서는 연내에 기본 입장을 정리하겠다며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급기야는 경기 인천의 6개 군이 수도권에 묶여 개발에서 소외됐다며 이들 6개군을 수도권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나서는 소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금 지방은 변변한 대기업 하나를 유치하지 못해 안달이다. 지역 유력 기업들도 틈만 나면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대구지역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지난해에도 역시 꼴찌를 면치 못했던 것으로 통계청은 14일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에 대기업의 공장들이 잇달아 들어선다면 지방으로선 상대적 경제력 상실과 함께 인재유출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을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서는 생산시설이 첨단화되면서 인구유입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협력회사나 하청회사를 포함하면 이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우리는 이미 파주 LG필립스 LCD공장의 신설로 구미산업단지의 협력회사까지 파주 문산으로 옮겨가는 경험을 한 바 있다. 가뜩이나 대구의 인구는 해마다 줄고 있고 원인이 대구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 청년층이 일자리를 찾아 대구를 떠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와 있다.
참여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는 과거 수십 년에 걸쳐 지속돼온 수도권 억제책과도 배치된다. 정부의 억제책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은 이미 전국토의 블랙홀이 된지 오래다. 1987년 40%를 돌파한 우리나라의 수도권 인구 비중은 2004년 47.9%에 이르렀고 이 추세면 2011년이면 50%에 이를 전망이다. 국토면적의 11.8%를 차지하는 수도권에 공공기관의 84%가 밀집해 있고 100대 기업의 본사 91%가 몰려 있는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 뿐이다. 우리나라 수도권 인구의 비중은 일본 동경권(32.3%), 프랑스 파리권(18.2%)에 비해서도 턱없이 높다.
정부는 80년대 들어 수도권내 대기업에 대한 입지규제와 공장총량제를 실시, 수도권 집중을 막기 시작했지만 업계의 끈질긴 요구와 정치적 풍향에 따라 지속적으로 예외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규제 자체가 누더기가 된지 오래다. 이 와중에 지방 산업의 공동화는 가속화됐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또 다시 추진되고 있는 '수도권 규제 완화' 움직임은 지역균형발전을 내세우고 있는 참여정부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이유가 된다. 정부는 수도권 정책에 대해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지금처럼 사안에 따라 태도를 달리 하면 수도권과 비수도권간의 갈등의 골만 더욱 깊어진다. 수도권이 더 이상 블랙홀처럼 인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정부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때다.
정창룡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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