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떻습니까] 김무연 전 경북지사

입력 2006-12-15 07:12:09

"80평생을 살아오면서 내 가족, 내 인생에 대해 너무 소홀했던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가정에서 좀 더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었던가. 내 자신 너무 공직에 얽매여 인생 자체를 망각한 것은 아닌가. 가정의 행복도 추구하고 인생도 즐기면서 공무를 수행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하지만 일에는 경중이 있고 우선 순위가 있게 마련이다. 대아(大我)를 위해서는 소아(小我)를 희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공자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 하였고, 맹자는 사생취의(捨生取義)라고 가르쳤다. 이것이 곧 인의(仁義)이다. 우리 세대는 그렇게 배웠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므로 내 인생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떳떳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1970년대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 1980년대 안동과 대구문화방송 사장을 각각 역임한 김무연(85) 대구시원로자문협의회 회장이 후대에 전하고 싶어하는 말이다.

대구 중구 삼덕동 경일빌딩 3층 '청풍회(지역 관계와 경제계 원로들의 모임)'사무실에서 만난 김 회장은 성실(誠實)과 극기(克己)를 한평생의 생활철학으로 간직했고 실천했다고 말했다. 그는 말처럼 흐트러짐 없는 몸가짐을 지키고 있었다. 80대 중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정하다. 눈썹이 하얗게 세었지만 검은 머리카락이 곳곳에 남아 있어 나이보다 10세 이상은 젊어 보였다. 기자와의 30분 남짓한 만남 내내 그는 몸에 밴 겸손함을 보여주었고 꼿꼿한 자세와 힘이 넘치는 목소리로 분위기를 압도했다.

2남4녀를 둔 김 회장은 자식이 모두 대구를 떠나 타지에 살고 있고 아내도 몸이 좋지 않아 서울 아들집에 머무르고 있지만 친구들이 좋아 대구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대구 앞산공원 부근에 있는 아파트에 혼자 머물며 손수 아침과 저녁을 해결하고 있다는 것. 잘된 자식을 여럿 둔 팔순 노인이 혼자 애처롭게 자취생활을 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었지만 김 회장은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음을 명쾌하게 설명했다. "샌드위치와 우유, 사과 반쪽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1시간 정도 앞산공원을 산책합니다. 집에서 1, 2시간 정도 신문을 읽고 친구들이 있는 청풍회 사무실로 나가 놀다 회원들과 된장찌개로 점심을 해결합니다. 저녁은 슈퍼에서 파는 데워 먹는 밥과 반찬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김 회장은 개인 비서를 두고 있지만 운전 등의 도움만 받을 뿐 스스로 일상 생활을 챙기고 있다.

김 회장의 소일거리는 바둑이다. 공직을 은퇴하고 안동문화방송 사장으로 있을 때인 60대 초반에 배운 바둑이 취미이자 하루 일과가 됐다. 사무실을 나오는 회원들의 실력이 좋아 틈틈이 바둑 책을 보며 공부를 한다고 했다. 또 한 달에 두 번은 골프 모임인 '백년회', '청풍회' 회원들과 필드에 나간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아내가 머무르고 있는 서울 아들집에도 한 달에 두 번씩 가 며칠씩 머무르다 온다고 덧붙였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서는 욕심을 버리면 된다고 했다. 원래 낙천적 성격인데다 은퇴 후 욕심으로부터 마음을 비웠다는 것. 자신의 이익에 집착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 원로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할 때라고 하자 "국채보상운동공원에 나가 시국선언을 하고 정치인들을 만나 원로들의 의견을 전하는 등 가끔씩 쓸데없는 짓(?)도 하고 있다."며 웃었다.

김 회장은 대구의 앞날에 대해서는 희망적인 전망을 했다. 대구는 예전부터 능력 있는 도시라고 했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대구시민들은 씩씩하고 머리가 좋기 때문에 틀림없이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회장은 자신이 대구시장(1974년 7월~1976년 10월)으로 일할 때는 정말 시 예산이 없었다고 했다. "당시 시 예산은 동촌 비행장의 팬텀기 한 대 값에 비교되곤 했습니다. 두류공원을 조성하고 앞산순환도로를 뚫기 위해 사용된 돈은 정부의 취로사업비였습니다."

김 회장은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돈이 드는 일을 할 수가 없었기에 시민의식을 키우고 화합을 다지는 등 시민정신운동에 치중했다고 전했다. 이웃간의 화합을 다지기 위한 방안으로 그는 반상회를 구상했다. 대구에서 처음 시작된 반상회는 내무부를 통해 전국적인 행사로 확대됐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또 도시 새마을 운동으로 최근 대구시가 자랑하고 있는 혁신 사업인 '담장 허물기 운동' 등을 당시에 이미 펼쳤다.

김 회장은 그러나 우리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의식수준이 더 높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지금 대구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시민들 대다수는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고 있지 않느냐."면서 "하지만 길거리에 불법 주차 차량과 불법 간판이 판치는 등 기초질서는 엉망"이라고 아쉬워했다. 시장과 구청장, 군수 등 행정가들도 요즘 생색나는 사업과 얼굴 내미는 행사에만 치중할뿐 행정 질서를 바로잡는 것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고 김 회장은 지적했다. 김 회장은 경제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의 의식 수준을 높이고 행정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행정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교성기자 kg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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