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사람] 伊 패션공모전 최연소 입상 최은영 씨

입력 2006-12-15 07:43:38

패션에 '미친' 대학생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 소문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패션 전공 교수들. 어느 교수는 "나보다 그 학생이 옷을 훨씬 잘 만든다"며 고백할 정도였다. 디자인을 그림으로 생각하는 풍토에서 한발 더 나아가 패턴을 뜨고 재단까지 완벽하게 해내니, 교수들도 혀를 내두른다.

하루 7~8시간 동안 매일같이 패션에 시간을 바친다는 그 학생은 최은영(23·계명대 4년·FISEP 6기)씨. 학교 실기실을 24시간 사용해서인지 수위 아저씨들 조차 인정한다는 그지만 첫 인상은 의외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다 면 티셔츠와 청바지.

"평범한 대학생들보다 패션감각이 떨어져보인다"고 했더니, "그것이 바로 고정관념"이라고 날카롭게 꼬집는다. "일 하는 데는 편한 옷이 최고예요. 한 때는 화장에, 예쁜 옷에 집착했지만 이젠 아니예요. 오로지 옷 만드는 데에만 관심있죠."

최 씨는 휴일도 없이 새벽 3~4시까지 작품 제작에 매달리고 있다. 최 씨는 떠오르는 엉뚱한 상상을 끊임없이 디자인하고 옷으로 만든다. 그런 노력을 국내가 아니라 해외 무대에서 먼저 인정해줬다. 그것도 패션의 최첨단이자 세계 최상의 무대인 이탈리아에서다.

"우연히 이탈리아 패션 공모전에 응모했는데, 1천명 가운데 20명 안에 들었다고 연락이 왔어요. 깜짝 놀랐죠. 그것도 최연소로 당선된 거였어요." 부랴부랴 포트폴리오 대로 두 달 동안 옷 여섯 벌을 만들어 이탈리아로 가져갔다. 교수들은 "보통 학생들은 1년 꼬박 투자해서 겨우 졸업작품 한 벌 만들어내는데, 불과 두 달 동안 이루어낸 것"이라며 깜짝 놀랐다. 아시아에서 공부한 학생으론 유일하다.

최 씨가 선택한 컨셉은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아름답다고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 결과 꼬리 있는 인간, 샴 쌍둥이, 기형인 신체, 비만 등 퇴화되기 이전 인간의 모습을 의상에 담았다. 마치 일본 디자이너 가와쿠보 레이를 연상케 할 정도로 전위적이면서도 디테일이 화려하다.

유럽의 패션전문지들은 최 씨의 독창성에 환호했다. 영국의 대표적인 패션 브랜드 존 갈리아노 스튜디오의 수석 디자이너 앨리사 파울미노는 "졸업 후에 유럽에 오면 언제든 연락해라"며 러브콜을 날렸다. 뿐만 아니라 유럽의 대표적인 패션 스쿨 학장과 교수들 역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그에게 이메일로 입사 계획을 물어오는 곳이 있을 정도.

패션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최 씨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처음엔 지방대인데다 학생들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아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갔다. 외국 사이트를 통해 최신 패션 트렌드를 익히는가 하면 일본·유럽·미국 등의 패션잡지를 구독하고 혼자 공모전에도 출품한다. 때로는 '100명 중 한명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게 무섭다'는 생각도 들지만 하고 싶은 것이 뚜렷하니까 어쩔 수 없단다.

다른 디자이너 브랜드에 취직하고 싶진 않다. "한 달에 10만원씩 받고 견습생으로 일하긴 싫어요. 내 디자인을 할 수도 없고요." 최 씨는 2~3년 후엔 세계적인 신진 디자이너를 배출하고 있는 벨기에 왕립 예술학교에 응시할 예정이다. "그 곳이 서바이벌 처럼 혹독하게 훈련시키거든요. 60명이 입학하면 졸업생은 5~6명에 불과해요. 그 수련 방식이 마음에 듭니다."

몇 년 후, 그녀의 디자인을 샤넬, 크리스찬 디올 의상과 함께 유럽 패션잡지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전 누구처럼 되고싶단 생각은 없어요. 다만 제 옷을 보고 '최은영의 옷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만큼 내 느낌이 묻어나는, 그런 옷을 만들고 싶어요."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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