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장이 사라졌어요
경북 울진군 기성면 구산해수욕장. 수년 전만 해도 백설 같은 모래로 유명했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 백사장에는 자갈만 버걱거린다. 해안에서 30~40m가량 이르던 백사장 너비도 3~4m로 급격히 줄었다.
죽변면 봉평해수욕장. 울진군민들이 침이 마를 정도로 자랑하던 곳이다. 넓게 이어진 깨끗한 모래밭과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소나무숲, 맑은 바닷물은 눈이 부실 정도라는 것.
하지만 지금 이곳에 가보면 눈을 의심해야만 한다. 백사장은 사라졌고 해변은 패였다.
이곳에서 14년째 음식점을 하고 있다는 이문기(56·울진 죽변면 봉평리) 씨는 "얼마 전만 해도 백사장이 30m쯤 됐는데 인근에 방파제가 생긴 이후 파도가 자꾸 올라와 지금은 3m밖에 안 된다."며 "백사장이 없으니 여름에 찾는 사람도 별로 없고, 음식점에까지 파도가 밀려올 위험이 있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울진 후포면 금음리 간이해수욕장. 명사십리로 이름을 날리던 이 백사장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온통 자갈밭으로 변해 있다. 파도가 도로변 소나무숲을 넘보며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울진만의 현상은 아니다. 영덕, 포항까지 경북지역 동해안 전체가 백사장 침식으로 인해 폭격을 맞은 듯하다.
영덕군 남호해수욕장과 창포지구는 파도가 백사장을 없앴고 도로까지 삼킬 듯하자 지난해 부랴부랴 호안블록을 쌓고 모래를 가져다 부었다. 그래도 언제 다시 무너질지 위태롭다.
포항에서는 도구, 송도, 북부 등 시내 3곳의 해수욕장과 흥해읍 죽천, 용안리 해변 백사장이 심하게 유실돼 백사장 복원 문제로 포항시의 고민이 크다.
백사장이 사라져 지난 여름 개장조차 못한 영덕 대탄해수욕장에선 70여 가구 주민들이 가계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인공구조물이 문제다
해양 전문가들은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해안에 무분별하게 설치한 인공구조물이 침식을 가속화하는 주범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국해양연구원 진재율 선임연구원은 "해안에 인공구조물이 설치되면서 자연의 평형상태가 깨져 침식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여기에다 인근 하천에서 해안으로 유입되는 모랫길도 막히면서 백사장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울진과 영덕은 최근 어선이 줄어들었지만 방파제 총 길이는 해마다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울진에선 지난 2000년 725척이던 어선 수가 올해 670척으로 55척 감소했지만 방파제 총 길이는 2000년 7천386.5m에서 올해 9천746.5m로 2천m 이상 크게 늘었다.
영덕에서도 지난 2000년 940척이던 어선 수가 올해 현재 920척으로 감소했지만, 방파제 총 길이는 2000년 5천211m에서 올해 6천485m로 길어졌다.
울진군 한 공무원은 "민선 시장·군수들이나 지방의원들이 표를 의식해 방파제를 마구 만드는 바람에 항구에 모래가 쌓여 못쓰게 되거나 침식현상을 불러 일으키면서 소중한 관광자원이 황폐해졌다."고 털어놨다.
관동대 김규한 교수(토목공학과)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도 파도에 의한 연안 침식을 막기 위해 방파제 등의 인공구조물을 많이 설치했다가 이에 따른 2차 침식으로 실패를 경험했다."며 "동해안 곳곳에 수없이 만든 방파제 등의 인공구조물을 친환경적 침식방지공법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여기에다 하천에 소규모 댐, 인공보 등이 마구 설치되는 바람에 해안으로 떠내려가는 모래량 자체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도 백사장 유실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렇게 하자
전문가들은 최근 동해안에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해안 침식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처럼 장기적인 연안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방파제 같은 인공구조물을 해안에 설치하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고 새 모래를 뿌려 백사장을 유지, 복구하는 공법인 양빈(養濱)공법 같은 친환경 침식방지공법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굳이 방파제를 만들려면 수중에 짓는 인공리프(수중 방파제)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50년 동안 침식해안이 875km에 이른 것으로 조사된 유럽의 경우 중앙정부 차원에서 연간 20억 유로(약 2조 4천여억 원)를 모니터링 구축에 투입하고 있다.
미국은 주 정부 차원의 장기적인 연안 침식 모니터링을 통해 지속적인 조사 및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연안 보존정책의 최우선을 연안 모니터링을 통한 연안 환경의 변화 감시 및 관리에 둔다는 것.
1990년대 우리나라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 일본은 해안 침식이 연간 160ha에 이르자 결국 지난 2000년 인공방파제 같은 강성공법을 지양하고 연안 모니터링을 통한 양빈공법 등 친환경공법에 주력하는 '신 해안법'을 만들었다.
우리도 부산 해운대에서 1990년대부터 개장시기에 맞춰 15t 트럭 400대 분량의 모래를 백사장에 쏟아붓는 양빈공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연안계획과 김무홍 사무관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2003년부터 전국 62곳의 침식지역에 대해 집중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해안 개발 최소화와 함께 강성공법을 지양하고 양빈공법 같은 친환경 방지대책을 서두르고 있다."고 밝혔다.
최정암기자 jeongam@msnet.co.kr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영덕·이상원기자 seagull@msnet.co.kr 울진·황이주기자 ijhwang@msnet.co.kr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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