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도하)꼴찌에 향한 관중들의 격려 박수

입력 2006-12-11 08:23:06

10일 리듬체조가 열린 '더 스포츠 시티' 내 아스파이어홀2. 텅빈 레슬링 경기장과 달리 리듬체조 경기장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평소 보기 힘든 여성들의 시원한(?) 복장 덕인 듯 많은 현지 남성관중들이 찾아 들었다.

경기장에 들어서니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심판단. 경기장 양쪽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은 여성 심판 둘은 까만 전통의상에 히잡(무슬림 여성들의 전통 머리수건)으로 얼굴을 가려 눈만 내어놓았다. 선수들의 짧고 화사한 의상과 대비돼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관중석에서도 리듬체조 경기를 보러온 여학생 40여명이 온몸을 검은 천으로 두른 채 앉아 있었다. 옷 사이로 청바지가 힐끔 보인다. 서로 재잘거리는 것을 보면 이들 역시 영락없는 10대 소녀들인데 선수들의 의상을 보면서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공을 들고 경기장에 들어선 한 선수. 유크라트 소요트(몽골. 사진)라고 소개된 그 선수는 화사한 색깔의 경기복만 아니라면 선수 안내를 맡은 전통 복장의 어린이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자그마했다. 10대 초반인가 했더니 알고 보니 16세. 그럼에도 146㎝, 32㎏에 불과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몸무게가 적게 나가는 선수 중 한 명이다.

들고 나온 공이 자신의 머리 크기보다 더 커 보였고 가는 팔로 공이나 제대로 튕길 수 있을까 싶다.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자 공을 던지고 굴리는 등 여러 연기를 곧잘 해낸 것도 잠시 뿐. 공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후 이어진 로프 부문에서도 음악이 끝난 뒤에도 미처 다하지 못한 동작을 몇 가지 더 연기해야 했다.

춤추는 것과 하이킹을 좋아한다는 소녀는 실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잔 실수가 많아 누가 보더라도 메달권에 들긴 힘든 연기. 경기를 마친 뒤 걸어나가는 소요트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최종 순위는 최하위인 21위. 총점도 63.925점으로 1위에 오른 알리야 유수포바(카자흐스탄)보다 무려 26.350점 뒤진 37.575점에 불과했다.

그러나 관중들은 열심히 연기한 '꼴찌'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내줬다.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이리나 차시나(24), 2005년 세계리듬체조선수권대회 3관왕 올가 카프라노바(19·이상 러시아)가 우상이라는 소요트. 따뜻하게 위로를 보내준 관중들의 반응을 소녀가 기억에 담아둔다면 다음에 출전하는 대회에선 환하게 웃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도하에서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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