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한국의 예언 문화사·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입력 2006-12-09 07:59:30

한국의 예언 문화사·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백승종 지음/ 푸른역사 펴냄

미래를 알 수 없는 인간에게 예언은 언제나 큰 관심거리였다. 특히 현실의 삶이 어렵거나 정국이 혼란스러울 경우 그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진다. 그만큼 예언의 역사는 오래됐다. 사해문서가 전하는 내용이나 동양의 주역, 가장 많이 알려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그런 사례들이다. 우리나라에도 예언서는 있다. 살펴보면 꽤 된다.

'정감록(鄭鑑錄)'이나 '격암유록(格菴遺錄)', '토정비결(土亭秘訣)', '도선비기(道詵秘記)' 등은 많이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동학의 경전 '동경대전', 증산도의 '도전'도 넓은 의미의 예언서라 할 수 있다. 사실 한국에 정치적 예언서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7세기경(636년) '신당서'에 언급된 '고려비기(高麗秘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략 1천300여 년의 역사임에도 예언에 관한 역사적 연구는 없었다. 지은이는 이 점에 착안해 '비결 연구'에 나섰다. 기본에 발표된 6편의 논문, 그리고 미발표 논문 1편을 수정해 엮은 것이 '한국의 예언 문화사'이다. 지은이는 연구를 하면서 이들 중 상당수가 '조선왕조의 운명이 언제 어떤 식으로 끝나리라.' 점친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사료를 꼼꼼히 분석하고 때로는 예언서의 정치·사회·문화적 의미를 분석한 결과이다.

그 내용엔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고려비기'를 당나라 측이 위조했다거나, 고려시대에는 국가가 예언을 관리·통제했다는 주장이다. 당대 유명한 예언가의 이름을 빌려 위조된 예언서도 많았고, 그 내용도 시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다는 점도 그렇다. 지은이가 주로 다루고 있는 '정감록'의 전개과정이 18세기 후반(영조 대) 함경도를 비롯한 북부 지방에서 출현해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이를 퍼뜨린 장본인이 서북 출신의 술사들, 즉 평민지식인들이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예언서에 의지한 반란을 19세기 말부터 전개되는 신종교 운동의 준비 단계로 해석하는 근거도 놓칠 수 없다. 지은이가 실증적·체계적인 분석을 통해 포착한 사안은 관련 연구가 적었었다는 한계가 있어도 매우 독창적이다.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은 흥미진진하다. '정감록…'은 역사 기록 이면에 있는 '중층적인 진실 찾기'를 위해 지은이가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 지은 '팩션(faction)'물이다. 지은이는 "역사적 사건과 행위에 담긴 중층성이 제대로 밝혀질 때 역사 속 인물들이 선택했던 다양한 생존 전략들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고 적고 있다.

역사적 상상과 추리와 판단을 한데 버무린 '역사가의 상상게임'을 위해 지은이는 예언서를 빙자한 역모 사건들 가운데 전형적인 세 가지를 골라냈다. 조직적으로 계획됐지만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렀던 사건(1장), 서북 출신의 평민지식인들이 비밀결사를 주도해 역모를 벌인 사건(2장), 신종교 단체를 결성한 듯 보이는 사건(3장) 등이다.

지은이는 이를 "역모자들의 심정을 헤아려보고" 싶은 입장에서 서술한다. 역적들 사이에도 얘기가 다를 수밖에 없는 '진실게임'을 다양한 방법으로 풀어내고 있다. 지은이가 역모자와 대화하기도 하고, 역모자들의 최후 진술을 들을 수도 있다. 소설 같은 서사적 묘사에 반대 신문과 추론, 뒤집어보기의 글쓰기도 있다.

"역사적 사유 과정과 그 결과를 독자들과 널리 공유하고 싶다."는 지은이는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을 넘나들며,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세 개의 사건에 대해 완성되지 않은 퍼즐의 조각을 하나씩 하나씩 맞춰 나간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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